발령 4년 째,첫 해에는 3학년,그 다음은 6학년,2학년 순으로 맡았다. 힘들었지만,모두 별 탈 없이 잘 보낸 것에 감사하며,가끔 그 아이들과 함께 나눈 시간들을 되새기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교사에게 주어진 특권 중 하나 일 것이다.
올해는 5학년 아이들과 만나게 되었다. 하북초등학교 5학년 1반 33명의 아이들. 올해는 이상하게도 아이들 이름을 빨리 외웠다. 일주일만에 외운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빠른 것도 아니지만,정말 사람 이름 기억하는 것에 둔한 나에게는 지난 3년과 비교할 때 정말 놀랄 만 했다. 처음에는 나이에 반비례해서 머리가 점점 좋아지나 하고 다른 선생님들께 구박받으며 자랑도 했지만,한달 반이 지난 지금은 우리 아이들이 전부 개성이 강한 아이들로 모인 것이 그 이유구나 싶다.
한시도 제자리에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온갖 징그런 귀염을 떨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끌려고 하는 아이,말을 걸어도 대답은 안하고 빤히 쳐다보며 씨익 웃기만 하는 아이,여자애지만 남자애들보다 더 터프한 아이,여자애들 보다 수다를 더 많이 떠는 남자 아이…
그런데 그 중에서도 유독 마음이 가는 아이가 있다. 교사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또 완전히 그러지도 못하는 것은 불완전한 이성을 지닌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아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새학년이 시작되고 일주일 후 부터였다. 처음은 옆반 친구와 집에 들어가지 않고,다음날 학교를 무단으로 등교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다. 4년 째 그런 아이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다. 결국 학교로 데려오기는 했는데,무슨 말을 해야할지,회초리를 대야할지,아니면 책이나 영화에서 봤던 것처럼 이해하는 마음으로 감싸줘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작년 담임 선생님을 찾았다. 집안이 넉넉지 못해 어머니가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 주질 못했단다. 그래서 학습 결손이 누적되었고,방과 후 특별 보충 지도를 받아야 했고, 거기다가 다른 아이들에게서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생겼단다. 그래도 마음이 순한 아이이기 때문에 작년에는 그런 일이 없었는데,예상 밖이란다.
앉혀서 이야기를 했다. "왜 학교에 안나왔니?","그냥 친구 집에서 자고 놀았어요.","그래도 학교는 와야지.","....","학교가 오기 싫었니?","아뇨.","집에 들어가기 싫어?","집에 가면 놀 친구들이 없어요.","친한 친구들이 없니?","예","왜?","친구들이 저와 안놀아줘요. 하지만 ○○(같이 학교를 안 온 친구)는 저하고 같이 잘 놀아줘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답답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 보려니 그것도 어렵다. 가족들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 하려 하지 않는다. 혹시 이러다 학급에서도 적응을 잘 못하고 더 어긋나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다시는 학교와 집을 안들어 가는 일이 없을 것을 약속하고는 마무리 지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본 대로 사랑으로 감싼 것이다.
대개는 선생님들이 그런 아이들을 대할 때면 호되게 야단을 치라고 주문을 하신다. 무서워서라도 다시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서 그러고 난 후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러고 난 후 이틀 뒤,또 집을 안들어갔단다. 학교는 나오고,집에는 이틀 동안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그 아이의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알게되었다. 토요일 저녁 고향인 진주에 가다가 다음날 새벽에 돌아와서는 다시 동네를 뒤져 찾아냈다. 전의 그 친구와 함께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도 믿고 약속을 한 것인데,배신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그녀석 얼굴을 대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겁먹은 눈을 보고 있자니 야단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약속을 했다. 이제 한 번만 더 그런다면 다시는 얼굴을 대하지 않겠노라며 다짐을 받았다. 그 후로는 방과 후에 학교에 남아서 함께 공부하다가 집에 가기로 하고는 매일 1시간씩 데리고 있으면서 문제도 풀리고,책도 읽히고 했다. 곱셈과 나눗셈을 제대로 못하길래,구구단부터 외우게 했다. 그리고 나눗셈의 원리를 가르쳤다. 생각보다 이해가 빨라 칭찬을 몇 번 해주었더니,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학급에서의 생활도 점점 나아지는 게 보였다. 이제 한달 반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칭찬을 받으면 받을수록 더 잘하려 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인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많이 나아졌다. 아마도 칭찬의 효과인가 보다. 아직은 더 많이 노력하는 일이 남았다. 단순히 그 아이가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5학년 1반이라는 작은 세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로 찾아가는 것이 그 문제의 해결점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 너무 다르다. 개성이 줄줄 흘러 넘치고,하고 싶은 말도 어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줄도 알고,내가 교장 선생님이나 연세 많으신 선생님들을 대할 때 어려워 하는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그런 면이 좋기도 하고,때로는 너무 지나쳐서 곤혹스럽기도 하지만,그것이 바로 요즘 아이들의 모습인가 보다. 무단 결석을 하거나,집을 안들어가는 것 까지도.
그래서 아이들을 대할 때면 너무 조심스러워진다. 아이들은 모두 하나하나 복잡하고도 섬세한 인격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더 그렇다. 분위기가 정연한 학급을 보다가 우리반을 보면 '에구'하는 한숨도 나오지만,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죽지않고 살아있구나 하고 자족하며 피식 웃는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학원에서 배우는 것 때문에 학교에서는 지루해 하는 아이,조숙해서 선생님이 자기들을 대하는 모습이 유치하다며 팔짱끼고 쳐다보기만 하는 아이,눈에 띄지 않으려고 뭐든지 소극적인 아이,개그맨이 되겠다며 장기자랑할 때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앞에 나와 끼를 발휘하는 아이. 모두가 우리 아이들이다. 모두가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소중한 존재이다. 그런 아이들이 모두 어울려 나름대로 개성이 흘러 넘치는 우리 반, 그 작은 세상이 조금은 삐걱거리지만 서로의 허물을 보듬어 안을 수만 있다면 그만큼 행복한 세상이 또 어디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