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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너무 밝은 지상..
사회

[시가 있는 마을] 너무 밝은 지상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4/30 00:00 수정 2004.04.30 00:00

 요즘은 지상이 너무 밝다. 여기는 비교적 깊은 산골이라 할 수 있는 통도사 앞마을이지만 깊은 밤이라도 은하수는 보이지 않는다.
 은하수를 생생하게 본 게 언제였을까?
 선친 제사 끝나고 제삿밥 먹고 새로 두 점을 칠 때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팔순 넘기시며 거동 불편한 어머니 잡는 손을 놓고 내려왔다. 서울과 부산의 정중간이라는 반진개를 지나 추풍령 반고개로 향하는 불빛 없는 산골에 들어서다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를 껐다.

 "왜요?"

 아내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묻는다. '당신 출근도 출근이지만 아이들 날 밝으면 학교 가야 하는데' 하는 말이 숨어 있다.

 "나와 봐."
 "우와!"

 작은 놈 감탄하는 소리에 큰놈도 나오고 아내도 나왔다. 어디를 둘러봐도 불빛 한 점 없는 깊은 산골이다. 아흐레 달마저 서편으로 넘어간 깊고 푸르고 검은 하늘에는 투명한 빛의 보석들이 박혀 있었다. 아니,바늘과 송곳으로 틈 없이 촘촘히 찔러 놓아 하늘 가득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기 하늘 가운데 구름 같은 것은 뭔데요?"
 "이 바보야. 은하수잖아."
 "은하수가 저래?"
 "사진에서도 못 봤니?"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고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고 계셨습니다.

늦여름의 하늘빛이 메밀꽃 위에 빛나고
메밀꽃 사이사이로 할머니는 가끔
나와 바람의 장난을 살피시었습니다.

해마다 밭둑에서 자라고
아주 커서도 덜 자란 나는
늘 그러했습니다만

할머니는 저승으로 가버리시고
나도 벌써 몇 년인가
그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후

오늘 저녁 멍석을 펴고
마당에 누우니

온 하늘 가득
별로 피어 있는 어릴 적 메밀꽃

할머니는 나를 두고 메밀밭만 저승까지 가져가시어
날마다 저녁이면 메밀밭을 매시며
메밀꽃 사이사이로 나를 살피고 계셨습니다.
 이성선의 <고향의 천정(天井)>전문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웠으니 여름밤이다. 고향의 천정은 별로 가득하다. 검은 천에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하늘의 별들이 문득 메밀꽃 가득한 메밀밭으로 보인다.
 밭둑에서 나는 바람과 놀았다. 할머니는 메밀밭에서 메밀을 꺾으며 어린 손자가 잘 놀고 있나 걱정이 되어 메밀꽃 사이사이로 나와 바람의 장난을 살피시곤 했다. 해마다 나는 그렇게 밭둑에서 바람과 장난을 하며 자랐다. 아주 커서도 덜 자란 나는 여전히 동심이 남아 밭둑에서 바람과 장난을 하곤 했다. 할머니 가신 뒤 나는 벌써 몇 년인가 바람과의 장난도 잊고 할머니도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메밀밭을 저승까지 가져가시어 날마다 저녁이면 메밀밭을 매시며 메밀꽃 사이사이로 나를 살피고 계셨는데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오늘 고향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서야 고향의 천정 가득한 하늘 메밀밭을 매시며 아직까지도 사이사이로 살펴보시는 할머니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닿는다.
 밤이 어둡지 않은 세상에서 할머니와 같이 자라지 않은 우리 아이들은 먼 훗날 할머니를 어떻게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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