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라는 발음도 쉽지 않은 이름의 이 사람은 영화 팬들에게는 잘 알려진 감독이다. 예전에 '펄프 픽션'이나 '재키 브라운'을 보면서 긍정적인 면으로 좀 별난 감독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번에 소문이 자자하던 'KILL BILL' 비디오를 보고는 좀 혼란스러웠다. 이 유명한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도대체 무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혼식 날 불의의 습격으로 남편과 가족을 잃고 코마 상태에 빠진 주인공이 5년 만에 극적으로 깨어나 복수를 한다는 스토리인데 이런 류의 복수극 스토리는 예전부터 여러 영화에서 써 먹은 진부한 것이다.
또 정의니 권선징악이니 하는 것을 운운할 수도 없는 것이 주인공이나 습격자나 모두 불법 범죄 조직의 구성원들이라 선과 악의 대결과 해피엔딩이라는 전통적인 영화 구도도 아니다.
다만 그 전개에 있어서일본의 사무라이와 야쿠자 영화,홍콩의 쿵푸 영화,이탈리아의 마카로니 웨스턴,거기에 애니메이션까지 여러 액션 장르를 섞어넣고,시간적 배열을 거스른편집 기법에 하얀 드레스와 눈과 노란 의상과 붉은 피의 극명한 색상 대비로 폭력과 잔혹성을 극대화시켜 영화의 재미와 긴장감을 더한 것은 타란티노 식의 특이한 구성인데,심히 불만스럽게도 3시간 짜리 영화를 2편으로 쪼개어따로 출시하면서 감독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 한 것일까?
일단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 대중문화,그 중에서도 영화에서 요구되는 첫째 명제라고 한다면 그 점에서는 이 영화는 대성공이다. 보는 동안 내내 화면에서 조금도 눈을 뗄 수가 없었으니까...
서양인으로서의 동양 무술 연기의 한계를 금발의 미모와 서늘한 푸른 눈빛으로 커버한 여주인공 우마 서먼과 루시 리우,다릴 한나,소니 치바,구리아키 치아미 등의 화려한 캐스팅과 사실감있는 1대 100여명의 사무라이식(야쿠자식) 칼싸움 장면,특히 아오바야(靑葉屋)의 눈 내리는 일본 정원에서의 결투 장면은 압권이다.
또 이 감독이 다른 감독은 할 수 없는 참혹하고 잔인한 폭력 장면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었다면 그 점에서도 성공했다고 할 수는 있겠다. 팔다리가 잘려 나가고 몸이 대나무처럼 양쪽으로 갈라지고 머리가 떨어져 날아가고 목에서는 분수처럼 피가 솟구치고…
이보다 더 잔혹할 수는 없다. 피로 시작해서 피로끝나는 영화이다. 원판이 그런지 심의 때문에 그랬는지는 몰라도 너무 참혹해서 일부장면은 흑백으로 처리할 정도이다.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에서 본 피를 합친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화면을 도배한다. 눈이 찌푸려지고 현기증이 나면서 영화 내용보다는 그것을 보고있는 자신이 더 두려웠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타란티노 감독특유의 '폭력 미학' 또는 '핏빛 미학'이라고 표현하지만 폭력(暴力)과 피(血)에 미학(美學)이라니 그게 어법상으로도 말이 되기나 하는지모르겠다.
타란티노 감독은 어릴 때부터 홍콩 무협 영화와 일본 사무라이 영화의 광적인 팬이었다는데 이 영화에서 그는 그가 영향을 받았던 이러한 요소들을 뭉떵거려 집어넣은 것 같다.
복수극의 기본 줄거리가 그렇고,여주인공이 입은 노란색 트레이닝복은 사망유희에서 이소룡이 입었던 것이며,갈등 해결의 도구가 총아닌 칼이며,일대 다수의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구도라던지 권격과 검술 동작 등이 그것이다.
하늘을 날고 장풍을 쏘고 하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만일 그랬다면 만화 같은 이 영화가 아주 우습게 되었을 것이다. 칼싸움과 격투(사실은 폭력) 장면은 아주 사실적인데 사무라이(혹은 야쿠자) 영화가 그렇다.
현란한 눈요기 감이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에 반해 보고 난 뒤에 남는 긍정적인 메시지나 교훈이 없다면 결코 잘 된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이 영화가 그러하다.
물론 재미와 메시지 둘 다 없는 영화보다는 백배 낫고 재미만 있는 영화 중에서도 이 영화는 매우 재미있긴 하지만,이 영화는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폭력과 잔인성의 한계까지 간 느낌인데 그것을 '재미'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이미 우리는 그런 점에서 무디어져 내심으로는 더 큰 자극을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영화이다. 너무 폭력적이다.
그런데 말은 이렇게 해놓고 다음에 2부가 나오면 이번에는 비디오가 아니라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비디오 및 관련자료 제공 : 스크린 비디오감상실)
전대식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