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북면 순지리 [사임당 생활공예연구소]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고운 자태의 한 여인이 반긴다. 이 연구소 소장인가 보다.
나이는 몇이나 됐을까? 티 한점 없이 맑은 얼굴로 보아 많아야 이제 서른을 갓 넘겼을 것 같은데 대중을 못하겠다.
‘아니, 웬 사람들이 이리도 많담?’
그리 크지도 않은 공간에 온통 사람 천지다. 배불뚝이 할배, 연 날리는 머슴애, 엿장수, 다림질하는 아낙, 길나서는 가시버시, 사물놀이 하는 풍물패, 선방의 늙은 스님, 산중 한담을 즐기는 젊은 스님들, 복숭아 그늘에서 사랑을 나누는 처녀 총각, 물레 잣는 여인, 시집가는 색시…
‘이 인간 군상들이 다 어디서 와서 여기에 이렇게 모여 있나?’
알고 보니 이들이 다 조금 전 나를 반겼던 여인의 아이들이란다.
늙었건 젊었건, 아이건 어른이건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자신이 낳은 자신의 아이라고 여인은 말한다. 그리 말하는 그는 누구인가?
유영진-
그는 닥종이 인형작가다. 이쯤에서 짐작들이 가겠지만 그가 말하는 그의 아이들은 바로 그의 손으로 빚은 닥종이 인형들이다.
인형이라고 알고 보면서도 마치 살아 숨쉬는 듯한 그것들이 금방이라도 뭔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아 넋이 뺏길 지경이다.
처음 봤을 때, 서른을 갓 넘긴 것으로 보았더니 알고 보니 마흔이 넘었단다.
종이를 매만지고 그것으로 인형을 만들어 거기다 숨결과 혼을 불어넣느라 이녁의 나이 먹는 것은 잊어먹었나 보다.
▶언제부터 종이를 만졌나요? 어릴 때부터 만들기를 좋아했습니까?
"만들기와 그리기를 다 좋아했지요. 그러나 어렸을 땐 그리기를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특별히 큰 꿈을 가진 것은 없었지만 그냥 그리는 것이 마냥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만화보기도 무척 좋아 했어요. 아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만화를 봤던 것 같아요."
3남 3녀의 둘째 딸인 그는 윗대로부터 예술적 유전자도 물려받았다. 할아버지는 글을 잘 하셨고, 집안 형제 자매들도 다 타고 난 솜씨를 자랑했는가 하면 어머니 또한 솜씨가 빼어났단다.
"어머니가 종이꽃을 만드시는 것을 보면 젊은이들보다도 훨씬 예쁘게 만드셔요. 어릴 적에 저는 어머니가 늘 헝겊으로 무언가를 만드시는 것을 보고 자랐어요."
그런 그는 유년시절을 거쳐 부산공예고등학교(지금의 부산디자인고등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그림과 공예수업을 받았다.
▶생활공예를 하게 된 동기나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우연히 하얀 백색의 지점토를 만났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이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 선생님을 찾아 갔지요." 지점토를 만지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은 때가 되어 그는 부산 동래 럭키아파트 앞에 작업실을 열어 놓고 이곳저곳으로 출강을 나서기도 했다. 그때 만났던 양산의 초등학교 선생님들과는 지금까지도 교류를 하고 지낸다고.
▶흙을 만지다가 종이를 만지게 된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인연이죠. 부처님과의 인연입니다." 그리 말하는 그는 독실한 불교도다. 그러면서 부산이 고향인 자신이 양산의 통도사 앞에서 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부처님과의 전생인연 탓이 아니겠느냐고 말한다.
"닥종이 인형을 하게 된 것은 통도사 서운암에서 천연염색을 배우고 염색 전시회를 하게 된 것이 계기라고 하겠는데 그때 다들 옷감에다 염색을 하는 것을 보고 ‘나는 뭔가 색다르게 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한지였고 그것이 곧 ‘인형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희한한 일이기도 합니다."
▶닥종이 공예의 어떤 점이 좋던가요?
"한지는 어디에서 보던 어떤 작업을 하던 편안한 느낌을 주지요. 마치 엄마 품속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가장 자연스런 느낌을 가져다줍니다.
닥종이 인형은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너무 좋아 해요. 해외전시에서도 한국적 정취가 물씬한 탓인지 닥종이 인형은 거의 인기 폭발입니다. 제가 제 아이들(인형) 덕분에 해외여행도 몇 차례나 했고 국내도 여기저기를 두루 돌아다녀 보았으니 자식들을 잘 둔 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활짝 웃는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란다. 하기야 그 많은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건사하자면 언제 결혼할 틈이 있었겠나 싶다.
▶이 예술활동의 전망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은?
"전망은 너무나 밝지요. 갑자기 서구화 바람이 불어와 우리의 생활 문화가 국적불명의 것들로 오염되고 있는데, 그러기에 우리 종이로 생활공예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뜻이 깊은 일이기도 하거니와 부가가치도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됩니다. 저는 앞으로 닥종이로 불교 설화를 재현해 볼 생각입니다. 저는 이 일을 제게 주어진 하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향이 달리 있겠느냐"며 제 한 몸 의탁하고 사는 곳이 곧 고향이라는 그의 양산살이도 어느새 10년이 되었단다.
생활공예에 공력을 들인 세월이 20년이 넘는다는 유영진 작가의 예술세계가 날로 무르익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www.dakdoll.co.kr 갤러리에서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