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스승의 날이었다.
1교시를 은사님께 편지 쓰는 시간으로 해서 담임들은 모두 교실로 올라가고 담임 없는 선생님들만 교무실에 앉아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자신이 배웠던 어느 선생님을 은사로 생각하며 편지를 쓸까. 배웠던 선생님들 중에서 은사로 생각하는 분이 몇 분이나 될까.
내겐 금년 여름이면 정년퇴직을 하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고향 마을에 계신다. 스승의 날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어른이다. 중,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선생님들 중 몇 분 얼굴도 떠올랐지만 편지는 쓰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시만 몇 편 읽었다.
내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옛 물건 정리하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모아 두었던 통지표를 봤던 생각이 난다. 장래희망이 선생님이거나 글 쓰는 사람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그때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을까.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 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 주는
선생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 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 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예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는 옷 한 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도종환의 <어릴 때 내 꿈은>전문
1989년 도종환 시인은 이 시 속의 봄흙 같은 선생님이 되는 길을 지키려던 까닭으로 학교에서 밀려났다. 나도 이런 봄흙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단에 섰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을 읽었던 것일까. 그 때 전교조 조합원들과는 아무런 연결도 되어 있지 않은 내게 처가, 본가에서 전화로 확인하곤 했다. '이제 자네 속(큰놈)도 세상에 나왔으니 가정도 지켜야 하지 않겠나.'
그 속(큰놈)이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다. 아침 7시 20분에 집을 나서 학교에서 공부하다 오면 밤 9시 20분이다. 수요일엔 학원까지 다녀와서 밤 11시 넘어 들어오고 토요일 역시 학원 다 다녀오면 역시 밤 11시가 넘는다. 일요일에도 학원가서 두 시간 공부한다. 일주일에 88시간 늘 대학가는 시험 공부한다. 같은 반 다른 아이들은 학원 더 다녀 일주일에 저보다 10시간 이상 더 공부한다고 집사람은 욕심 더 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내 속에도 그런 욕심이 숨어 있지만 욕심껏 그릇 키우려다 그릇에 금가게 되면 아무 것도 담지 못 한다. 선생으로서 우리 속(큰놈)에게 쉬는 시간과 밥 먹고 학교 오가는 시간, 그리고 집에 와서는 공부하지 말고 그 시간 자체를 즐기라 하며 내 욕심 줄이려 애쓴다.
또 다른 내 속(아이)들에게도 따뜻한 봄흙 같은 선생이 제 자리 잡을 수 있는 세상으로 세상 열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