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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마파람의 행복나누기] 그녀의 지아비는 행복했다..
사회

[마파람의 행복나누기] 그녀의 지아비는 행복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5/22 00:00 수정 2004.05.22 00:00

 우리 부부가 살아 온 과정을 지켜보아 온 이들 중에는 아내와 내가 노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자못 궁금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게 가난에 짓눌려 살면서도 어쩜 저렇게 속없이 웃고 다닐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모르는 말씀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자인가.
 
 아들 부자- 그렇다. 아내는 내게 시집와서 아들을 넷이나 낳아 주었다. 하나도 낳아주지 않았던들 내가 어찌 했을까만 이 아이 귀한 세상에 아들을 넷이나 낳아 준 아내가 고맙고, 자랑스럽기 이를 데 없다.
 굳이 아들들이라서 더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더러는 딸을 보려고 그랬느냐고 묻기도 하지만, 나는 딸, 아들 구별 없이 다만 하나님께서 아내와 내게 허락하시는 대로 받아들였을 따름이다.

 그래서 누가 내게 자녀를 몇이나 두었느냐고 묻기라도 하면 나는 앞으로 맞게 될 며느리 넷을 미리 염두에 두고 짐짓 ‘아들 넷, 딸 넷’이라고 너스레를 떨어 상대방을 놀라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앞으로 맞이할 네 며느리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부푼다.
 
 나는 결혼생활 26년에 이사 또한 그 햇수만큼 했다. 대부분 낡은 책 꾸러미에 그다지 값도 나가지 않는 가재도구들이 2.5톤 트럭 두 대는 실히 되는 것을 이끌고 한해에 한 번 꼴로 이곳저곳 옮겨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다 방 값 싼 곳을 찾아다니느라 가는 곳마다 물이 귀했다. 그러나 독마다 물을 가득 가득 받아 두고 아기 기저귀 곱게 빨아 아기 머리맡에다 쌓아두면 아내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부자라며 행복해 했다.
 
 지금은 형편이 좀 나아졌지만 단칸 셋방에 아들 네 놈을 가로로도 눕히고, 세로로도 눕히고는 내가 ‘이게 내 천국’이라고 흰소리 치던 시절에도 아내는 알량한 제 남편을 세상에서 최고 멋쟁이라고 속고 살았다.
 어리석은지고. 그래, 내 아내야말로 세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어리석은 여자다.
 
 아내는 내가 읊는 시 한 수에 홀딱 반해 그만 아무 가진 것 없는 알량한 사내에게 자기 인생을 저당 잡히고 만 위인이다. 그러고는 남편이 가자는 대로 산동네든 달동네든 무작정 따라다닌 일들을 곰곰이 짚어보면 아내는 실로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는 아내의 그 어리석음이 고맙다. 판사 사모님 되고, 병원장 마나님 된 동창생들 쳐다보고 고급 자가용 굴리는 친구 남편과 빈털터리 자기 남편을 비교하고 살자면 자기 자신은 얼마나 처량했을 것이며 나 또한 오죽이나 비참하였으랴.
 어리석은 내 아내. 그 어리석은 여자의 지아비라서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세상에 이렇다하게 내놓을 간판도 없고 세상 살아가는 주변머리도 없던 나는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을 헤치며 숨 가쁘게 세상을 사는 동안 실직을 식은 죽 먹듯 했다.

 결혼 얼마 전에 시작한 말단 군무원 생활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고 끙끙대던 내가 결혼 뒤 곧바로 사표를 내고 조그만 장난감가게를 차렸다가 그것조차 제대로 꾸려 나가지 못해 수월찮은 빚만 안은 채 물러나 앉은 것이 1982년의 일로 결혼 4년째 접어든 해였다.

 그때는 벌써 둘째 아이도 태어났을 때였으니 넋 없이 천정만 쳐다보고 누워있는 나보다는 아내가 더욱 심각한 위기감에 빠졌을 법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느닷없이 손뼉을 짝짝 치는 게 아닌가.
 
 "마침 잘 됐어요. 당신 직장 다닐 때는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 했는데, 우리 이참에 연극이나 한판 벌여 보죠."
 
 "연극?"
 
 나는 연극이라는 말에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아내는 곧장 달려 나가 여기저기를 쫓아다니면서 스폰서를 구하고 포스터를 찍었다.
 
 <아무아무와 아무아무의 이야기-> 아내와 나의 이름이 또렷이 박힌 포스터가 길거리에 나붙었다. 흔치않은 부부무대였기 때문이었던지 공연은 꽤 성공적이어서 유료 관객만 800여 명이 모이고 따라서 한 두어 달 지낼 생활비도 마련했다.
 
 남편의 실직을 오히려 잘된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 그것이 곧 변변찮은 남자와 더불어 사는 어리석은 여자가 고달픈 삶 속에서 자연스레 터득한 자기 나름의 삶의 지혜였던가 보다.

 아내는 어떤 상황이든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매우 익숙해 있다. 가령 남편이 실직해 있으면 ‘좋은 사람과 같이 있을 시간이 많아 좋다’고 하고, 남편이 어렵사리 직장을 구하게 되면 ‘이제 돈이 생기게 되어서 좋다’고 기뻐했다.
 
 참 희한한 논리다. 그래도 그 어설픈 논리가 아내와 내 삶의 행복을 이루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니 세상살이를 언제나 논리정연하게만 살 일은 아닌가 보다.
 
 마파람
행복한 부부관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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