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엔 둘째 형님 둘째가 장가가는 날이라 집사람과 결혼이 늦어 이제 두 돌 안 된 조카를 안은 막내 동생 내외 태우고 운전하여 서울을 다녀왔다.
누군가 하늘을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고속도로를 따라 펼쳐 놓았던 모양이다. 들판에는 푸른 하늘과 온통 환하게 빛나는 구름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내려앉은 하늘과 구름 군데군데 개미만한 사람이 이앙기로 모를 내고 있었다. 이앙기로 모내고 남은 구석진 자리는 사람이 허리 굽혀 하늘에 구멍을 내며 모를 심는 모습도 보였다. 모내기하는 들판 건너 보이는 낮은 산들엔 신록이 이제 녹음으로 짙다.
신록은 그야말로 참 잠깐이다.
"상인이가 네 살? 때였지 아마." 막내가 오늘 장가가는 조카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한다. 상인이는 그 해 여름 한 철 고향 큰형님 집에 와 있었는데 걷는 것 말하는 것 모두 느렸던 녀석이 한나절 밭둑에서 뒹굴다가 허리띠를 잃어버린 모양이었다. 한 손으로 내려가는 허리춤을 잡고 머리 위로 들어올린 또 한 손으로는 잠자리 꼬리를 잡은 채 엉거주춤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영 이상했다. 살펴보니 바지에 반쯤 마른 똥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큰형수가 '세상에 이를 우째, 지 엄마가 봤으면 뭐라 할까.'하며 바지를 벗기고 씻기는 동안에도 머리 위로 든 손에서 잠자리 꼬리를 놓지 않았다. 아마 제가 잡은 것으로는 첫 잠자리였을 것이다.
"어린 사람 자라는 것처럼 늙는다면 어떻게 살까. 그렇게 늙지 않는 것 고맙게 생각해야지." 세월 빠르다는 막내 말에 아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수수하면서도 이쁜 신부, 큰 키에 웃는 모습이 선한 상인이가 서로 잘 어울려 보였다. 신혼여행을 몰디브로 간다며 결혼식 끝나고 식당에서 하객들에게 인사 다 끝낸 다음 신랑이 반바지 차림으로 색띠와 풍선 장식을 단 차에 올랐다. 우리는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다. 평생에 한 번 있는 신혼여행인데 마음껏 신혼 티를 내야 한다며 아내는 여행 내내 한복을 입었었지만 이제 반바지 차림의 신랑 모습도 하나 어색하지 않았다.
"형수는 형이랑 결혼한 것 후회해 본 적 없어요?" 막내가 내려오는 차 안에서 불쑥 물었다.
"살면서 후회한 적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결혼 잘 했지 뭐. 애인으로는 빵점이지만 신랑으로는 만점이거든요. 형이."
"그런데 애인으로는 빵점이었던 형이랑 왜 결혼했는데요?"
"신랑으로는 만점짜리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반대하지 않았다면 우리 결혼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엄마가 반대하니까 오기가 나서 했을 거야 아마." 아내가 웃는 얼굴로 건너본다.
향기는 가둘수록 깊어지고
사랑은 감출수록 넘쳐 흘러라
온 겨울 꽁꽁 감추었던 푸른 꿈은
천지사방 온 산천을 뒤덮고
수십 년 묻어 온 불씨
솟구치는 구름 기둥을 붉게 태우며
일렁이는 바닷물을 태워 달궈라
강물은 막을수록 부풀고
사랑은 덮을수록 불길 더해라
졸시 「사랑은 감출수록」전문
청춘은 육체적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정의 마음에 있다고 한다. 감출수록 넘쳐흐르는 사랑의 열병을 꽃나무는 해마다 치르고 늙어서도 겪어 신록과 녹음은 해마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