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세상에서 생명처럼 귀한 것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김선일씨를 가슴에 묻었을 것입니다.
2년 전 6월에도 우리는 생떼 같은 어린 자식 효순이 미선이를 뼈에 사무치는 원한과 함께 가슴에 묻었는데 또 다시 너무나 어질고 착한 청년을 또 다시 묻었습니다.
선교사가 꿈이고 대학원을 가기 위하여 모래 바람이 사납게 부는 이라크에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식구들과 그의 친구들을 만날 기쁨으로 달래던 가난한 한국의 청년이 정부의 냉담으로 싸늘한 죽음이 되어 돌아와 우리들 가슴에 묻혔습니다.
김선일씨가 이 고국을 사랑하는 10분의 1 만치만 이 나라가 이 조국이 김선일씨를 사랑했더라면 아마 김선일씨는 싸늘한 주검이 아닌 따뜻한 미소를 띄우고 앞으로 더 큰 평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갈 당당한 김선일씨로 우리 품에 돌아왔을 겁니다.
김선일씨의 죽음은 예고된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린 얼마든지 김선일씨를 살리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대한민국과 미국이 어떤 관계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라크 아닌 미국을 제외한 세계와 대한민국이 어떤 관계가 될 것인지도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사실들 속에는 우리 여성들이 반대하는 차별, 소외, 우월주의, 폭력. 자주 상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을 봅니다.
아마 김선일씨가 고관대작의 아들이었다면 결코 죽음을 당했을까? 아니 파병을 찬성하는 국회의원 아들이었다고 해도 지금쯤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군대 대신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랑하고 있을 겁니다. 고관대작의 아들이 아니라서 군에도 가보지 못한 병약한 자가 아니라서 노무현 정부는 국익과 평화를 앞세워 이라크저항세력에게 “죽여라” 라고 당당히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우리가 알기로는 이라크 정부는 전쟁은 막자고 그리고 자신들의 국민들은 보호하자고 해서 사담후세인 침실까지 내 보이면서 대량 살상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자신들의 오만한 우월주의에 빠져 세계의 평화를 외치며 침략 전쟁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의 평화는 이때부터 깨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적어도 우리 여성들이 바라볼 때는 말입니다. 미국이 말하는 세계 평화와 세계가 말하는 세계 평화는 다른가 봅니다. 노무현 정부가 말하는 평화와 우리 국민들이 말하는 평화가 다르듯 말입니다.
이라크가 그리고 세계가 우리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추가 파병과 함께 테러의 위험에 더 추가된 한 국가로, 그리고 국익을 외치는 정부와 평화를 외치는 국민들을, 그리고 국익과 평화의 차이는 도대체 어떻게 다른가 하고 의아해 하면서 말입니다.
왜 이라크의 주인인 이라크 국민들이 오지 말라고 하는 데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파병반대를 외치는데 노무현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보다 미국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평화라고 생각한다 말입니까?.
미국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얼마만큼 중요할까? 미국을 기쁘게 하면 할수록 우리 국민들의 생명은 어떻게 될까?
그럼 미국이 말하는 평화가 이루어진다 말인지? 그렇게 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여성운동을 하는 이들은 여성운동은 곧 평화 운동이라고 합니다.
차이를 존중하는 운동이라고 합니다.
여럿이 함께 더불어 행복한 삶을 위한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존중하는 운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목소리는 항상 한 성에 국한된 목소리가 아닌 사회의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내는 목소리가 됩니다.
“ 당신 생명이 소중한 것 처럼 내 생명도 소중하다”
이말은 곧 내 생명이 소중한 것 처럼 당신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우리 여성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들은 모든 이들과 함께 파병철회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는 여성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