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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그네뛰기..
사회

[시가 있는 마을] 그네뛰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7/03 00:00 수정 2004.07.03 00:00

 "올해는 윤달이 있어서 7월인데도 단오 지난 지 며칠 안 되는구나. 옛날 단오 땐 뭘 했을까?"
 "그네뛰기요."
 "응, 그래. 창포물에 머리도 감고, 씨름이랑 그네뛰기도 했지. 오늘 배울 추천사의 추천이 '그네'니까 추천사는 '그네뛰기 노래'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네 노래'라고 해야겠구나. 그네뛰기는 한자어로 '유선희(遊仙戱 신선놀이)'니까."
 "유선희요? 유선희는 내 여자친구 이름인데."
 "하하하. 그렇기도 하구나. 그런데 '그네타기'라 하지 않고 왜 '그네뛰기'라 할까?"
 "……."
 "그네를 탈 때 발을 굴러서 높이 올라가잖아. '뛰기'는 달리기도 되지만 도약(跳躍)하는 것도 되잖아. 그네를 타고 도약해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그네뛰기'야. 뛰어 올라서 하늘까지 가겠다는 노래지. 그런데 그네를 타고 하늘까지 뛰어 올라 갈 수 있을까?
 "아니요."
 "그네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늘로 도약하려고 끊임없이 발을 굴러대던 그네뛰기를 생각하며 누가 '추천사' 한 번 읽어볼까?"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 머언 바다로 / 배를 내어 밀듯이 / 향단아. //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 배갯모에 뇌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 나를 밀어 올려다오. / 채색(彩色)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 향단아.
 서정주의 <추천사 - 춘향의 독백> 전문
 
 "시 읽어보니 어때? 시 속에서 춘향이가 그네 타는 장면은 춘향이가 이도령을 만나고 난 다음일까?"
 "아니요. 만나기 전이라야 될 것 같은데요."
 "왜?"
 "히히, 그냥요."
 "하하, 선생님 느낌도 그렇구나.
 서울에서 '어린신부'에 나온 문근영이 우리 학교로 전학해 왔다고 생각해 봐. 문근영이 날 먼저 알아볼까? 내가 문근영이를 먼저 알아볼까?"
 "내가 먼저 알아보죠."
 "서울에서 남원 촌 동네에 열여덟 살 먹은 '배용준'이 뺨치게 잘 생긴, 게다가 공부도 잘한다는 사또 자제가 왔으니 동갑내기 춘향이가 당연히 먼저 이 도령을 알아 봤겠지. 이 도령이랑은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첫눈에 반한 거야. 춘향이가.
 그런데 책방도령에게 직접 닿을 방도가 없잖아. 그래서 향단이더러 다리 놓아 달라고 한 거야. 그네 밀어 달라는 말이.
 그런데, 남원의 문근영이인 춘향이를 좋아했던 총각들이 없었을까. 잘나가는 사대부집 총각들, 힘깨나 쓰는, 글 잘하는 총각도 유부남도 춘향이 넘봤겠지. 이 도령에 견주면 풀꽃더미,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 같은 존재겠지만 춘향이가 좋아 춘향이 주변을 밝히며 서성거렸겠지.
 하지만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 말고 다른 이들에게는 철저히 이기적인 것. 이 도령 보고 나니 다른 존재는 다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야. 그래서 그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춘향이 입장에서는 아무 거리낌 없이 사는 듯이 보이는 사대부집 안방으로 날아가고 싶었던 거야.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을 모르는 것 아니지만 이성적 판단이야 이미 눈에 찌짐이 발리고 귀에 떡볶이가 꼽힌 춘향에게 어떤 힘을 발휘했겠니. 이룰 수 없는 사랑인 줄 번연히 알지만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도록 이 도령을 그네 뛰는 이곳으로 데려와 달라고 무려 네 번씩이나 '밀어 달라'고 했던 거야."
 "그런데 시인 김종길은 <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춘향이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번민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으로 이 시를 읽어서 이 도령과의 만남 다음으로 해석하고 있어. 그리고 거기서 나아가 이러한 지상적 사랑의 애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결국은 도로라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인간의 근원적 비극을 암시하는 것으로 확장해서 읽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읽어야 시 제대로 읽은 것이 되겠지."
 
 사랑은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겪는 것이라 한다. 신록에서 녹음으로 넘어가는 단오 무렵의 그 풋풋한 나이에 겪는 사랑의 번민보다 아름다운 삶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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