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친정의 모친과 부친이 모두 함경남도가 고향이시다.
지금도 나의 친정 모친은 자신도 파파 할머니가 되셨지만 "애고 우리 엄마가 아직 살아 나를 기다리고 있겠나" 하신다.
부디 살아 계셔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긴 한숨 속에 고스란히 묻혀 나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모친의 그 바람은 단지 자신의 혈육을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지 통일의 바람이라고 난 한번도 생각 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TV로 보고 있는데 친정 모친은 나에게 전화를 하였다. "진아야 이제 통일이 되는 것이가" 하면서 "이렇게 두 우두머리가 만났는데 이제 통일이 안 되겠나, 이제 되겠제" 그러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 놀랬다.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왔던 통일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 까? 예순 중반을 넘긴 이의 통일은 만남이었다.
하지만 30 중반의 나의 통일의 모습은 도대체 어떤 모습을 띄고 있었던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2002년에 금강산에서 치러 진 2차 남북 여성통일 대회를 참석하게 되었다.
각계각층의 남북 여성들이 모두 함께 모여 통일에 한 발작 한 발작 다가가기 위한 만남을 가진 것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만났던 북한 여성들은 모두 씩씩하고 따뜻하였다.
내가 제일 처음 만났던 여성은 사회과학연구원서 근대사를 연구하는 연구원으로 있는 여성이었다. 집은 평양이고 아들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아들이 세계 서예전에서 1등을 하였다고 은근히 나에게 자랑을 하였다. 어딜 가나 엄마들의 자식 자랑이란...
유희 오락시간에 만난 두 번째 여성은 유치원 교원이었다. 나이는 29살이었지만 25살 정도 밖에 보이지 않았다. 많은 북측 여성들은 한복을 많이 입고 있었는데 이 여성은 한복은 입지 않고 있었다. "왜 한복을 입지 않느냐니까" "불편해서 자신은 양장을 입는다"고 하였다. 이곳에서도 세대간의 차이를 느꼈다.
이 친구는 아주 수줍음도 많이 탔지만 말도 아주 잘했다. 그래서 내가 "말을 너무 잘하네" 하니 "교원이니 당연히 잘 하죠" 라고 응해서 우린 한참 웃었다. 우리는 헤어지면서 통일 되면 꼭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고 50대 후반 여성 옷을 만드는 공장의 사장님도 만났다.
이분은 자신을 소개 할 때 우리 여성들은 사회의 꽃이다. 이 사회의 꽃을 더욱 아름답게하는 여성 옷을 만드는 공장에서 근무하는 사장이라고 소개 하였다.
사장이라고 하여 나는 너무 놀랬다.
이분은 "우리는 자주 만나야 합니다. 이렇게 자꾸 자꾸 만나는 것이 통일 되는 것이 아닙니까. 이렇게 만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이렇게 만나는 것이 통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만나는 것이 통일이라고 하였다. 나는 우리 모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우리 남북 끼리 만나니 통일이 너무 쉬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우리는 심심찮게 이북의 모습을 예전과 다르게 매체를 통해서 자주 본다.
그리고 이제는 평양에 가는 것이 그다지 큰 뉴스 거리도 되지 않을 정도로 남과 북은 가까이 다가섰다. 곧 평양에서 답방도 있을 것이라는 뉴스도 간간히 나오고 있다.
사람 만나는 것을 가장 좋아 하는 것이 우리 여성들이다. 그리고 지쳐서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서 즐기는 이들도 여성이다. 그러면서 가리지 않고 금방 흉금 털어놓고 쉽게 상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잘 하는 것도 우리 여성들이다. 아무래도 통일에 성큼 성큼 다가가기에는 우리 여성들의 체질에 딱 맞는 것 같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8월이다 통일의 열기가 무르익을 8월에 어디 한번 우리 여성들이 좋은 인간성으로 통일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가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