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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소나기
사회

[시가 있는 마을] 소나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7/24 00:00 수정 2004.07.24 00:00
 고2 여름방학 때였다. 불알친구 다섯이 찌개거리 양념과 채소 담은 냄비를 방천에 걸어둔 채 고기통발 몇 개 묻어두고 기다리다 하나씩 둘씩 모두 인근 십리 안에서는 물이 가장 깊고

 고2 여름방학 때였다. 불알친구 다섯이 찌개거리 양념과 채소 담은 냄비를 방천에 걸어둔 채 고기통발 몇 개 묻어두고 기다리다 하나씩 둘씩 모두 인근 십리 안에서는 물이 가장 깊고 넓었던 죽전 보(洑)에서 수영복도 없이 알몸으로 물놀이를 했다.
 물가에 줄지어 선 포플러 숲이 일렁이더니 나뭇잎이 하얗게 뒤집어진다. 콩밭 사이로 듬성듬성 심어둔 옥수수 긴 팔이 너울대는 것이 보인다. 백화산 쪽에서 검은 구름이 이는 듯하더니 앞서거니 뒤서거니 크고 작은 파문이 일며 수면 가득 튀어 오르는 물방울로 가득하다. 천지 한 소리로 아득한데 허공을 가르며 번쩍이는 빛줄기 뒤따라 우레 소리가 물에 잠긴 몸속까지 흔들어댔다.
 천지가 어둡고 물 속에는 우리 다섯뿐이다. 물 밖 방천 위 길에도 사람 흔적 없다.
 누가 먼저였을까. 한 녀석이 발가벗은 채 방천 위로 슬금슬금 올라서더니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살갗을 뚫을 듯 따끔거리는 소나기 속으로 팔 벌리고 알몸으로 내달리는 해방감에 몸과 마음을 맡겼다. 우하하하 이렇게 덜렁거리며 내달릴 수도 있구나.
 그런데 앞장섰던 녀석이 우와왁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방천 아래 물 속으로 뛰어내렸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수건으로 머리만 가린 채 흠뻑 젖은 웬 아줌마가 엉거주춤 서 있었다.
 
 고2 여름 방학 때였다 불알친구 다섯이 죽전보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소나기가 왔다 목만 내밀고 물 위에 부서지는 빗방울을 보고 있다가 한 녀석이 먼저 발가벗은 채 둑길을 내달렸다 천지 뒤흔드는 우레, 허공 가르는 빛줄기, 따끔거리는 소나기 속에서 알몸으로 내달리던 해방감 // 깨달음이란 어떻게 생긴 물건일까
  拙詩 <소나기 2> 전문
 

 몇 년 전 일이다. 보충수업 끝내고 오후 자율학습 시간에 한 주일 전부터 약속했었던 이웃반이랑 우리반 남학생들이 축구시합을 했다. 옷차림 갖추고 축구화 신고 운동장에 들어서는데 후두두둑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쏟아 부었다. 느티나무 아래로 물러섰다가 현관문으로 물러섰는데 몇 녀석이 그 빗속에서 나오지 않고 약속한 시합을 하자고 했다. 두 반 담임이 서로 얼굴 한 번 보고는 운동장으로 내려서니 엉거주춤 물러나 있던 녀석들 다 따라 내려왔다.
 다 젖는 것 한 순간이었다. 한 번 젖고 보니 소나기 속에서 달리는 것 참 통쾌했다. 운동장 한 쪽이 논물 대어 놓은 것 같아 둥둥 떠다니는 공 좇아 철벙거리는 재미로 웃음바다를 만들며 전신에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철 안 든다니까." 집사람이 남자들을 싸잡아 낮추었지만 졸업생 녀석들 가끔 만나면 그 소나기 속 축구 시합 이야기한다.
 
 너 온다는 소식에, 산록 / 녹음도 일제히 손들어 환호하고 / 밭둑 옥수수 긴 팔 너울대며 / 동구 밖에 섰구나 / 후둑 후두두 / 잰 말발굽 소리 / 피어오르던 흙먼지도 가라앉고 / 천지 한 소리로 아득하여 / 이따금 / 허공 가르는 깨달음도 순간(瞬間) // 서늘한 바람 / 탁 / 트인 세상 // 너는 / 이미 왔다 갔구나
  拙詩 <소나기 3> 전문
 
 한 순간에 왔다가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게 소나기다. 지금도 아이들이랑 소나기 속에서 축구한다고 뛰지 못할 것 없다. 알몸으로 방천 내달리지 못할 것도 없다. 그런데 그 때처럼 자연스러울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 막을 수 없다. 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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