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테니 볼 사람은 보고 즐기기만 하라는 식의 어린애 같은 감독의 치기어린 컬트영화 한 편을 가지고 뭔가의 의미를 부여하고 뭔가를 찾아내려다 실망한다면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봐서 일 것이다.
전작 영화 4편으로 '헐리우드의 악동' '천재 감독' '이단아' 등의 별명을 얻은 '쿠엔틴 타란티노' 라는 감독이 그런 감독이며 그가 만든 <킬빌>(Kill Bill)이라는 영화가 그런 영화이다.
<킬빌1>의 해설서
이번에 후편(Vol.2)을 보았는데 일단은 재미있고 전편(Vol.1)에 비해 스토리 전개도 짜임새 있어 또 다른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물론 현란한 눈요깃감과 극에 달한 폭력으로 일관하여 스토리가 빈약했던 전편을 보완하여 영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전편에 비해 폭력적인 요소는 많이 줄어서 전편과 같이 피가 난무하고 잘려나간 팔 다리가 나뒹구는 자극적인 장면을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런 영화가 되어버렸을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다 장황한 대사와 관객을 향한 긴 독백은 신파조의 유치함도 있지만 오히려 옛날에 보던 영화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킬빌2>에서는 <킬빌1>을 보면서 내내 궁금해 하던 몇 가지 것들이 밝혀지면서 상황이 정리되고 영화는 완성된다. "삐-"하는 소리로 감춰뒀던 '브라이드'의 본명, 저음의 목소리와 손만을 보여주며 베일에 쌓여있던 '빌'의 정체, 브라이드가 결혼식 날 머리에 총을 맞은 이유와 브라이드의 딸이 정말 살아있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빌의 최후 등등… 마치 <킬빌1>의 수수께끼를 푸는 해설서와도 같다.
옛 영화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비디오 점원일을 하던 어린 시절부터 동양 무협영화에 심취되었다고 하는데 그가 특히 즐겼던 일본 사무라이나 야쿠자 영화, 중국(홍콩) 무협 영화, 이소룡과 성룡 류의 맨손 쿵후액션의 이미지가 그대로 그가 만든 영화에 스며들어있다. 거기에 더하여 이 영화에는 마카로니 웨스턴 스타일도 더해져 영화액션의 모든 장르가 뒤섞여 있다. 그의 영화가 메시지 없는 단순 폭력 영화로 매도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매력을 갖게 하는 이유는 영화의 곳곳에서 70년대 중고시절 어른들의 눈을 피해 그런 류의 영화를 보러 다니던, 다소 불량기 있던 옛 시절의 아련한 향수에 젖게 해주는데 있는 것 같다.
<킬빌>(Kill Bill)이라는 제목에서 보듯이 빌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인데 데이빗 캐러딘이 연기한 이 캐릭터는 주인공 브라이드의 연인이자 무술 스승이며 조직의 보스이기도 하다. 또 한사람 <킬빌1>에서는 크레이지 88의 리더 쟈니 모, <킬빌2>에서는 브라이드의 쿵후 스승 파이메이로 1인 2역을 한 홍콩의 쿵후스타 유가휘. 이 두 사람은 쿠엔틴 타란티노의 어린 시절 영화 속의 쿵후 영웅으로 타란티노의 적극적인 권유로 인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한다.
이 영화에는 한국인 캐릭터가 한 명 등장하는데 헬렌 킴(Helen Kim)이 연기한 여성 킬러 카렌이다. 카렌이 습격해 왔을 때 브라이드는 자신의 임신 테스트를 하고 있었는데 절체절명의 대치 중 브라이드의 임신 사실을 확인한 카렌은 브라이드의 부탁에 따라 대치를 풀고 "임신 축하해" 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비록 짧은 동안의 등장이지만, 이 영화가 주인공 브라이드의 임신이 계기가 되어 전개되는 배신과 복수와 또 그에 따른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볼 때 영화 전편을 통해 매우 의미 있고 인상적인 장면이다.
<킬빌2>는 러브스토리?
배신의 결행은 모성애의 발로였지만, 사랑했던(지금도 사랑하는) 연인을 죽여 복수를 한 후에 딸 모르게 욕실 바닥에서 울부짖는 브라이드의 모습은 킬러이기 이전에 한 남자의 연인이며 한 아이의 엄마일 수밖에 없는 여자의 본디 모습을 잘 보여준다. 바로 이 장면에서 감독은 사랑과 모성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영화를 너무 '진지'하게 보는 것일까?
타란티노 감독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언제나 러브 스토리를 만들어왔다. <킬빌2>도 러브스토리다. <펄프 픽션>이나 <저수지의 개들> 같은 영화들도 서로를 모르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는 점에서 모두 러브스토리다. 난 러브스토리와 폭력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방식이다."
전대식 /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