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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문학철 시인이 보내 준 창간1주년 축하메세지..
사회

문학철 시인이 보내 준 창간1주년 축하메세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8/13 00:00 수정 2004.08.13 00:00

 낯익은 이웃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
 
 나는 지금 여기 살고 있다. 지금 저기 살 수는 없는 일이요, 여기 내일 살 수도 없으며, 어제 거기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내 삶은 허구나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요 사실이다.
 
 말하지 않고 가만있어도 / 속에 환한 꽃이 피어 있는 얼굴은 / 꽃처럼 환한 말을 꿰어 놓고 있다 // 반쯤 감은 눈으로 기대 앉아 있어도 / 속에 맑은 별빛 담겨 있는 눈 속엔 / 밤하늘보다 깊은 우주가 열려 있다 // 달빛은 구름 뒤에서도 밝아 달무리 짓고 / 햇빛은 큰나무 그늘 아래에도 / 키 작은 나무를 키운다 // 구절초꽃 샛길로 찾아왔어도 / 속에 환한 달님 담고 있어 / 가을 하늘을 맑게 밀어 올린다
 拙詩 <구절초> 전문
 
 전에 내가 쓴 구절초란 시를 읽고 텁석부리 수염을 길러 털보라 불리는 친구가 구절초와 쑥부쟁이, 산국을 정확히 구분해서 이야기해보라 했다. 구분해서 말할 수 없다면 내가 쓴 구절초는 시가 아니라 사기라고 했다.
 개별꽃이나 벼룩이자리꽃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려면 그 꽃 앞에 쪼그려 앉아 얼굴을 꽃 가까이 바싹 가까이 대고 봐야 한다. 멀뚱히 선 채 봐서는 살필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실체의 세계가 아닌 거대담론의 이미지의 세계에 산다. 산에 한 번 가지 않고도 산에 피는 꽃 이름이나 꽃의 생태를 산에 사는 사람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는 것은 진정한 앎도, 삶도 아니다.
 하늘의 별자리만 살피며 걷다가 구렁텅이에 빠진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아도 된다. 거대한 이미지만 추구해서는 실체의 삶을 살 수 없다.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체험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멀리 있는 중앙의 거대 이미지 집단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숨쉬고 같이 얼굴 대하고 있는 우리 지역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작게 나누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들의 자그마한, 그렇지만 이미지가 아니라 숨결이 배어 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있는 양산시민신문이 창간 1주년을 맞았다. 먼 곳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 옆에 같이 바싹 쪼그려 앉아 우리 삶의 숨결을 함께 진지하게 나누는, 우리 동네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신문으로 1년을 같이 해 왔다.
 낯익은 이웃들의 살아 있는 삶을 곁에서 같이 나누어 가는 양산시민신문이 늘 함께 우리와 같이 숨쉬고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
 
 그런 뜻에서 좋아하는 시 한 편을 덧붙인다.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 함께 있다 돌아서면 /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 / 가만히 들여다보니 //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 수없이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 떨어지면 또 새 꽃봉오릴 피워올려 /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아운 것이다 // 제 안에 소리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도종환의 <목백일홍>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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