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시장, 양산북부시장, 덕계종합상설시장 등 양산의 재래시장과 고만고만한 규모의 생필품 취급 소매점 소상인들의 한숨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대형할인마트인 이마트가 신도시에 이미 문을 열었고, 연말쯤에는 웅상지역에 롯데마트가 개장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막해 졌기 때문.
거대 자본을 밑받침으로 한 대형유통업소의 공세에 과연 영세 재래시장이 이겨낼 재간이 있을까?
어찌 보면 이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 무한경쟁 속의 적자생존을 넋 놓고 보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논리로 따지자면 아무 할 말이 없을 저 영세 상인들의 몰락을 수수방관 하여서는 아니 될 일이다.
방책은 없을까?
시장 상인, 지역경제담당 시 공무원, 학계, 경제전문가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보면, 어린 목동 다윗이 거한 골리앗을 쓰러트릴 수도 있었던 것처럼 재래시장이 거대자본과 당당히 맞서서 살아남는 길이 있을 수도 있으련만….
물론, 그 방책은 대형유통업소를 무너트리고 재래시장만 살리자는 것이어서는 안 될 터이다. 이미 새로운 유통질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이들 대형마트를 무조건 배척할 수는 없는 일이므로 대형마트도 나름의 역할을 하게하고 재래시장은 재래시장대로의 고유 기능을 살릴 수 있게 하는 방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방편을 우리와 똑 같은 상황을 이미 치르고 나름대로 일정한 자구책을 강구해 이제는 제법 탄탄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타 지역의 성공사례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 재래시장의 성공사례를 우리 지역 실정에 맞게 벤치마킹 한다면 아마도 어렵잖게 양산의 재래시장을 살리는 길을 모색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수원 '팔달문시장'
지난달 22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배기선ㆍ김태홍ㆍ김태년 의원 등이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시장'을 다녀갔다.
이는 국회에 상정된 '재래시장육성 특별법' 입법을 앞두고 재래시장 활성화 시책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 팔달문시장의 현대화사업 추진 상황 등을 점검하고 현지 상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팔달문시장은 백화점과 대형 할인점 등 유통업체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탄탄한 시장기반을 유지함으로써 국회 입법조사활동 대상지로 떠오른 것이다.
수원시가 기초자치단체로는 비교적 빠른 지난 2001년부터 시장 현대화사업을 추진한 팔달문시장은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원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남문상가, 영동시장, 지동시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당시 갤러리아백화점과 신세계 이마트, 삼성 테스코 홈플러스 등 대형 유통업체 15개소가 수원에 진출하면서 재래시장을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감소하는 등 수원의 재래시장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과 같았다.
팔달문시장의 변화는 이런 위기감에서 싹텄다. 수원시는 우선 팔달문 시장의 초라한 환경에 '메스'를 들이댔다. 영동시장에서 남문상가에 이르는 141m 구간에 '아케이드'거리를 조성했다. 아케이드는 채광형으로 꾸며져 비좁고 우중충했던 모습이 산뜻하게 변신했으며 냉·난방 시설이 설치돼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쇼핑할 수 있게 됐다.
또 영동시장에서 지동시장에 이르는 100m 구간 도로 바닥을 타일로 교체하는 등 초라했던 재래시장의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그리고 이 구간에는 어린이놀이방과 소비자보호센터, 관광안내소, 다목적 휴게실 등 편의시설을 갖춘 '고객지원센터'를 설치, 고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밖에도 자가운전자들을 위한 주차공간도 대폭 확충하고, 시장 건물 외벽을 교체하고 비좁은 중앙통로와 무질서한 간판 등을 정비하는 등 제대로 된 리모델링 작업을 했다.
그러나 팔달문시장의 변신은 하드웨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팔달문 재래시장은 시장 현대화 사업과 함께 업종 단일화 등 전문거리 조성으로 변신을 꾀했다. 3000여개 점포가 몰려 있는 영동시장은 한복과 이불 등 혼수시장으로 특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100여개 점포가 포목 관련 품목을 취급중이며 향후 타 점포의 업종을 끌어들여 전문 영역을 넓혀나간다는 계획이다.
패션 1번가 골목은 의류ㆍ신발 등 대형 메이커 상품거리로, 남문상가와 시민백화점은 의류, 피혁류 등 중ㆍ저가 잡화류 거리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시설 현대화만으로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는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이렇듯 '업종 단일화 등 전문성을 갖춘 시장으로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지동시장 내 '지동 순대타운'도 팔달문시장 활성화에 크게 한몫하고 있다. 잡채와 선지 등 8가지 재료를 섞어 찐 순대는 쫄깃쫄깃하고 담백한 맛이 그저 그만이어서 수원 양념갈비와 함께 수원의 대표음식으로 통할 정도.
맛도 맛이지만 값도 저렴해 시장 상인뿐 아니라 쇼핑하러 나온 주부, 인근 회사원들이 주 고객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華城) 순례 코스가 끝나는 지점에서 불과 10여m 거리에 위치해 있어 2시간 이상 성곽을 둘러보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는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이밖에도 팔달문과 지동교간 구간을 '차 없는 거리'로 단장해 사진과 미술 전시회, 길거리 농구대회, 전통무예전, 농악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펼치는 등 관심거리, 볼거리를 곁들여 젊은층 소비자의 발길을 끈 것도 성공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서울 골목형 재래시장 '우림시장'
서울 중랑구 망우2동 우림시장. 3백29개의 점포가 있는 이 골목형 재래시장도 과감한 탈바꿈을 시도, 떠나가던 손님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있다.
우림시장은 2001년 환경개선사업을 통해 비가와도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아케이드(지붕)를 설치하고 쇼핑카트를 비치하는 등 현대식 시장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1970년대 초 생겨난 우림시장은 30년 가까이 지역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곳. 그러나 인근에 대형할인점이 2개나 생기면서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크게 줄었다. 점포 가운데 10% 이상이 텅 비었고 남은 상인들도 시장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몰락을 맞이하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더 이상 시장 쇠퇴를 바라볼 수 없다"며 팔을 걷어붙인 시장 상인들과 중랑구청이 힘을 합쳐 시장 살리기에 나섰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래봐야 소용없을 것'이라고 시큰둥하던 건물주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우림시장 역시 시장 활성화 방안을 '주상복합 건물 위주의 재개발'에만 치중하지 않았다. 시장 골목에는 비를 막는 캐노피(비 가리개)를 설치하고, 시장 통로를 부쩍 넓혀 쾌적한 장보기를 돕는 등 소비자들의 상품구매특성의 변화에 따른 하드웨어의 개선에도 주력하는 한편, 대형 할인점에서나 볼 수 있던 쇼핑용 카트도 50대나 비치해 소비자들이 '재래시장의 아기자기한 잔재미와 할인점의 편리함'을 동시에 맛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시장 입구에는 50면의 전용주차장을 마련, 물건을 살 때 점포에서 받은 무료 주차권으로 이용이 가능토록 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을 타고 우림시장은 시장 전체 매출이 30% 이상 오르고 시장 내 건물과 땅값도 30~50%나 오르는 등 경제적인 부수 효과를 거두어 냈다.
이렇듯 우림시장은 거대 자본과 최신의 마케팅기법으로 무장한 주변의 대형할인점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며 역동적인 재래시장의 현대화에 본보기가 됨으로써 재래시장의 형태를 살리면서도 얼마든지 손님을 끌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 대표적 케이스다.
◀다른 사례들
이밖에도 이미 서울의 인왕시장을 비롯해 길음시장, 면목시장, 면목 골목시장, 수유시장, 숭인시장, 월정로 골목시장 등 모두 8곳이 이미지를 변신해 시민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고, 이달 들어서는 전북 장수시장이 건물 리모델링을 마친 데 이어 충북 청주 원마루시장, 충북 충주 무학시장 등 다섯 곳이 환경개선사업을 마치고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났다.
중소기업청은 그동안 전국 459개 재래시장에 총 2192억원의 예산을 지원, 주차장ㆍ화장실ㆍ아케이드 설치, 건물 리모델링 등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을 벌여 왔다. 중소기업청은 지난달 추경예산으로 확보한 210억원 역시 재래시장 환경개선사업에 추가로 투자, 이번 달 안으로 지원을 희망하는 시장의 신청을 받을 계획이다.
◀성공 포인트
날로 쇠퇴해가는 재래시장을 살리는 방안으로 우선 떠올리는 것이 고층개발과 시설 현대화다. 그러나 재래시장을 살리는 길을 단순히 시설 현대화에서만 찾는다면, 자칫 재래시장 고유의 모습은 잃고 상권은 살리지 못한 채 오히려 퇴보만 가속화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재래시장 활성화와 현대화는 앞의 성공사례에서 보듯 재래시장만이 지닌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재건축ㆍ재개발 위주의 정책은 지주와 상인의 이익을 대변할 뿐 결과적으로 전통시장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또 "고층으로 지을 경우 임대료가 올라 기존 영세상인들이 쉽게 입점하기 어려워지고 고급품목 위주의 상가로 변하게 된다"는 지적도 있다.
양산 재래시장의 활성화-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은 무엇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잘 가려 우리 지역의 실정에 맞는 활성화 대책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