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지율 스님 '곡기도 끊고, 말문도 닫고'..
사회

지율 스님 '곡기도 끊고, 말문도 닫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8/27 00:00 수정 2004.08.27 00:00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기로....

 고속철도(KTX, 부산~대구) 천성산 구간 공사중단과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를 요구하며 지난 6월 30일부터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지율 스님의 단식이 18일로 50일째를 맞았다.
 단식 46일째였던 14일 오전 10시부터는 숫제 말문마저 닫아 버리고 '묵언단식'에 들어갔다. 지율 스님은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지율 스님이 묵언단식을 하기는 이번이 두 번째로, 지난 해 부산시청 앞에서 50일 동안 단식농성을 하면서 후반기부터 묵언을 한바 있다. 부산시청 앞 단식농성을 할 때 어머니가 찾아와 "보통 사람처럼 살면 되지 않느냐"며 단식 중단을 요구했으나 지율 스님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까지 130일에 달하는 단식과 삼보일배, 3천배 수행을 해온 지율 스님의 건강이 위기상황까지 온 가운데 '단식종료'와 '일시적 공사중단'을 맞바꾸자는 청와대 측의 중재안이 나왔지만 그것조차 지율스님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지난 11일,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과 불교환경연대 등 불교단체 대표자들의 만남으로 공사 잠정중단 합의에 도달했던 천성산 관통 고속철도 문제가 환경영향평가 재실시 문제에 합의를 보지 못한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청와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은 불교환경연대 앞으로 "천성산 공사를 중단할 테니 대신 단식도 풀고 2차 소송결과에 승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의 중재안은 부산고등법원이 제시하는 '권고안'조차 수용하지 않은 '미봉책'이라며 지율 스님과 불교환경연대 측은 청와대에 큰 실망감을 나타냈었다.
 지난 7월3일 부산 고등법원은 권고안의 형식으로 '공사중단과 단식중단'을 비롯한 '환경영향재평가'를 실시할 것을 권고했는데 그것에 비하더라도 이번 청와대 측의 중재안은 원천적인 해결의지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지율 스님 측의 지적.
 이와 관련, 지율 스님 측 한 관계자는 "지율 스님은 45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는데도 고작 6줄로 된 합의서 문안을 내놓고, 그것도 논란의 핵심인 환경영향평가 재 실시에 대한 언급은 빼놓은 정부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묵언단식에 들어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속철도 공단도 강행할 듯
 
 이런 가운데 경부고속철도 공단 측 역시 '힘'과 '실정법'으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지율스님의 "최소 6개월에 걸친 일시적인 공사중단과 환경영향 재평가 요구"에 대해 고속철도공단측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전체 공정에 미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며 받아들일 뜻이 없음을 밝혔다.
 무엇보다 지율스님은 주변의 걱정과 만류에도 불구,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에 조계종은 지율스님의 단식이 생명을 앗아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속에 단식종료를 종용하고 있고 지율 스님을 아끼는 주변인들도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큰 일 난다"며 애를 태우고 있다.
 그러나 지율 스님의 묵언 단식을 애써 외면하며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은 한 비구니 스님의 안위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더욱이 후보자 시절 불교 지도자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공사전면백지화'를 약속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을 두고 지율 스님 본인은 물론, 환경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의 실망감이 크다.
 지난 2002년 부산시청앞 단식을 하던 지율스님의 손을 부여잡고 "노무현을 믿어 달라"던 대통령과 청와대 관계자들은 지율스님의 단식기간동안 단 한차례의 방문조차 하지 않은 채 싸늘한 시선만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스님 지율과 대통령 노무현이 천성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근본에서부터 어긋나 있는 것이다. 환경문제를 경제, 정치논리로 접근하게 되었을 때 대통령으로서는 아마도 환경문제는 영원히 해결 할 수 없는 숙제일지도 모를 일이다.
 곡기도 끊고 말문마저 닫아 버린 저 비구니 스님을 '죽든 살든'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이쯤에서 정부가 무언가 답변을 내 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율 스님은 단식농성 48일째 되던 날, 노무현 대통령 앞으로 한편의 글을 띄웠다.
 다음은 천성산 도롱뇽 지킴이 사이트(www.cheonsung.com)에서 옮겨온 지율 스님의 '노무현 대통령께 드리는 글'이다.



노무현 대통령께

만일, 내 생에 하루가 남아있다면
그 하루를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당신은 나라의 국운이고 민족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하루의 빛이 꺼지고
제가 땅에 묻히고, 남은 이름마저 묻는다 해도
세상의 빛으로 왔던 아름다운 시간의 기억만은 가져가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저와 함께
천성을 어둠 속에 묻는다면
그때는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렁 저렁 어우러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법을 알고 법을 바로 세워야 할 분이 당신이기 때문이며
수많은 생명을 묻은 뒤 찾아오는
이 땅의 피비린내를 역사에 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성의 아픔을 기억해 주세요.
지난 날 당신이 '공약'했던 원칙과 약속이 아니라면
고향의 냇가에 발목을 적시고 미래를 꿈꾸었던 소년의 이름으로.

천성산의 아픔이 제게 빛으로 왔듯이
상처입은 천성은 당신에게도 빛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생명의 빛이 아침 창으로 날아오듯이.

2004년 8월 16일

단식 마흔 여덟 날 아침 지율 합장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