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늘 저녁엔 대구로 와달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그냥 오라했다. 차를 몰고 나서서 경주 지나치는데 동생한테서 어머니가 어느 병원에 계시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보름 전 선친 제사 때 뵈었을 때엔 안색도 좋았고 바깥 걸음도 잘 하셨다.
며칠 전 막내 동생이 "요즘은 의술이 좋아 사람들 암 아니면 돌아가시지도 않아."하던 말이 떠올랐다. 그냥 병원에 가 계시거니 했다.
벌써 햇수로 9년 전이다. 어머니 일흔 일곱일 때 병원에서 오늘내일 하셨다. 일주일에 세 번 양산에서 상주까지 오갔다. 그때 병실에서 깜박 잠이 들었던가 보다. 누군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키가 큰 사람이 어머니를 데려가려 해서 어머니 여든까지라도 사시게 해 달라고 막아섰다. 안 된다는 것을 억지로 우겼더니 그럼 여든 여섯 되면 데려가겠다고 했다. 여든 여섯이라고 하니 모시고 있는 큰형님과 함께 힘없이 늙은 어머니 모습이 떠오르며 슬몃 걱정이 되었다. 고모님이 노환으로 오래 고생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여든 셋은 안 되겠느냐고 하니 그렇게는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여든 다섯. 어머니 뵐 수 있으려니 했다.
아내가 있는 빵집에 들어서니 문 닫을 준비를 다 해두고 있었다.
"어머니 어느 병원에 계신데?"
"집으로 전화해 봐."
질녀가 울먹이는 소리로 '할머니 돌아가셨어요. 상주 성모 병원으로 가요.' 한다. 순간 숨이 턱 막히고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에 뜨거운 것이 괸다.
"엄마, 낮까지 멀쩡하셨어요. 아침, 점심 다 잘 자시고 오후에 정미가 애기 땀띠 때문에 온다던 날보다 하루 일찍 데리고 와서 '윤정'이 앞에 앉히고 '내 몸에서 나와 이제 너한테까지 닿았구나.' 하시더니 증손녀 데려온 손녀더러 등 밀어 달래서 목욕하고 나와 옷 입으시던 중에 앉은 채 물 갖다 달래서 떠 왔더니 앉았던 자리에서 엎어져 계시잖아요. 그래서 '엄마, 왜 그래요?'하고 고함을 치며 일으키니까 고개를 한 번 들고 보시더니 달라지시잖아. '상일'이가 인공호흡을 시키고 119를 불러 산소호흡기 달고 병원에 가서 10분도 안 되어 돌아가셨어요. 의식 잃고 1시간도 채 안 되었던 것 같아요."
나뭇잎 하나가 // 아무 기척도 없이 어깨에 / 툭 내려앉는다 //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 // 너무 가볍다
이성선의 <미시령 노을> 전문
어머니 얼굴 뵈니 평소 주무시던 모습 그대로 너무 평안한 얼굴이다. 큰놈 태어났을 때 병원으로 오셔서 "너도 이제 속이 생겼으니 겉껍질이 됐구나." 하시던 말이 떠오른다. 8촌까지 헤아려 우리 윗대에 살아 계시는 분이 없다. 이제는 우리가 살아 있는 껍질로는 가장 겉껍질이 되었다.
속이 싱싱한 불꽃이라야 제 맛이 난다 // 아내 늦은 상차림을 도와 / 옅은 갈색 마른 껍질이 / 두세 겹 빈틈없이 둘러싼 / 잘 마른 양파 얇은 겉껍질을 벗긴다 / 코 끝을 자극하는 짙은 향으로 / 연두빛이 도는 납작스레 동그란 양파가 / 환한 빛 속살을 드러낸다 / 버섯전골에 맞게 세로 썰기로 자르고 남은 / 양파 반쪽 / 속이 싱싱한 타오르는 불꽃이다 // 큰놈 낳던 날 오신 어머니 / "너도 이젠 속이 생겨 겉껍질이 됐구나" // 전골 냄비 하나 가운데 두고 / 신김치 한 접시, 밥 한 공기씩 / 큰놈, 작은놈, 집사람과 내가 둘앉은 식탁 / 향그런 불꽃으로 환한 우리 식탁 주위엔 / 이제는 겉껍질로 둘러싸는 / 우리들의 /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아! 어머니
拙詩 <버섯전골을 먹으며> 전문
이제 옅은 갈색 마른 껍질이 된 어머니.
천년만년 살 것처럼 하지만 누군들 언젠가 겉껍질이 되지 않겠는가. 일흔 일곱에 크게 아프신 후 모든 마음 다 내려놓고 낮은 자리에 앉으시어 항상 평안하셨기에 좌탈하셨으리라.
※상중에도 잊지 않고 '시가 있는 마을' 원고를 보내주신 문학철 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리며,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양산시민신문 임직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