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세대들은 어릴 적 신작로 노역을 나가보았던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노역장에서의 면서기의 힘은 실로 막강하였다. 마을에서 꽤 무서웠던 할아버지도 면서기의 한마디에 꼼짝없이 노역을 해야 했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출장 감독하는 면서기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눈치를 살폈을 정도였으니까…. 당시의 민초들에게는 공무원은 그저 무서움 반 부러움 반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공무원이 정치권력의 충실한 복명자, 또는 하수인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하고, 주권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 봉사하는 행정수행자와 공복으로 탈바꿈해 자신의 능력과 노동력을 바치고 있으니 세상이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 싶다.
이는 공무원 스스로가 '두려운 면서기'가 아닌 '따뜻한 민서기'로 옷을 갈아입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의 양산시 지방공무원복무조례 개정안에 대한 논의과정을 들여다보면 양산시가 시대를 거슬러 옛날로 회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우선 우리 양산시와 시의회가 조례안의 심의를 위한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남 도내 20개 시ㆍ군 중 우리 양산과 진주를 제외한 18개 시군이 이미 '지방공무원복무조례'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이중 12개 시ㆍ군은 노조 수정안을 받아들여 조례를 개정하였으나, 우리 양산은 이에 대해 팔짱만 끼고 늑장을 부리고 있다가 지난 달 26일에야 제66회 시의회 임시회에서 행자부 원안을 그대로 수용하고 말았다. 그것도 복무당사자인 하위직 공무원의 대표기구인 공무원노동조합과의 의견 수렴 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처리를 했다. 이제 와서 행자부안을 통과시킬 바에야 그동안 왜 그토록 시간을 끌어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표준안에 제시된 제3조 2항의 비밀엄수 의무조항을 보면 내부고발을 통한 공직사회의 건전성을 담보해 내야할 정부기구 스스로 부정과 부패의 여건을 조성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 제13조 동절기의 복무시간에 대한 조항이나 제18조 연가일수의 축소 등에 관한 표준안을 시의회에서의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스스로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조례제정 능력의 한계를 드러낸 거나 다를 바 없다. 주5일 근무제의 취지는 피상적이고 양적인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높은 질적 수준의 노동력 향상과 인간 삶의 가치질서를 한 차원 높게 추구하고자 한 시대적 흐름의 반영이라는 것은 현장의 노동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고 있는 진리에 가깝다. 그러함에도 우리 시의회의가 선뜻 행자부 원안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현장의 노동경험을 갖추지 못한 높으신 분(?)들의 고매한 결정이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나냐며 비아냥거리고 있다. 물론 공무원노조 측의 반발도 거세다.
문제는 의결된 복무조례안이 공포되면 조례안의 법적 구속력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와 의회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국가의 미래발전을 위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가운데 이번 조례안의 문제점을 면밀히 파악, 공포 이전에라도 손보고 다듬을 부분이 없는지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공무원은 우리사회의 굳건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