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초 담임 배정을 받고 보니, 여학생 반이었다. 설레임과 당황스러움이 교차한다. 설레는 마음이 들었던 건 순전히 사범대 다니던 시절 그려보았던 여고 담임의 꿈을 이제 이루었다는 낭만적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학생을 잘 모르기에 당황스러움이 더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여학생 반을 맡게 되었다고 하니, 아내는 걱정을 먼저 하는 것이다. 힘든 일 년을 보낼 것 같다고 하면서 여학생들이라고 예쁘고 귀엽게만 생각하지 말고, 여성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엄격하게 가르치라고 충고도 해 주었다.
아무튼 학기가 시작되고 보니 나는 햇병아리 교사가 되어 있었다. 7년간 남학생들에게 익숙해 있던 내가 부딪치는 난감한 문제는 많았다. 일단 말을 조심해서 하고 꾸중을 할 때도 고함지르지 않고 부드럽게 타이르려고 애를 썼다. 반에 들어갈 때도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헛기침'을 하거나 '노크'를 하였고, 남선생인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옷을 갈아입는 아이들을 야단칠 때는 '어른 앞에서는 옷을 함부로 갈아입는 게 아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학교 규정에 긴 머리를 할 경우 단정하게 묶는다는 규정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머리끈을 사서 하나씩 선물해서 아이들의 환심을 사 어느 정도 교감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남의 구역에선 어쩔 수 없음을 곧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우리 반 아이 하나가 교무실로 들어와서는 나에게 눈길도 한 번 주지 않고 여선생님에게 달려가더니 귓속말로 뭐라고 한 뒤 약을 받아간다. 좀 섭섭한 생각도 들고 해서 무슨 약이냐고 물었더니 얼굴만 빨개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아이가 나간 뒤, 그 여선생님께 여쭤보니 생리통이 심해서 진통제를 받아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조회시간에 이렇게 선언해 버렸다.
"앞으로 생리통이 심한 사람들은 '그 날이에요'라고 한 마디만 해라. 그러면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쉬도록 해주겠다."
이후 아이들은 생리가 시작되는 첫날 당당하게 '그 날이에요'라고 말하고 가게 되었다. 처음 이런 결정을 했을 때 '악용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했지만 아이들을 믿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학교 현장의 여선생님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 직장인 및 공무원에게 보건휴가를 인정하는 것처럼 생리로 인한 결석, 조퇴, 지각, 결과에 대해 생활기록부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공결로 인정할 것"을 교육부에 요구한 적이 있다. 이에 교육부는 공평성에 있어서 문제가 있고, 또 학생들이 악용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답변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런 여선생님들의 주장이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수업 도중 너무 아파서 울음을 삼키며 참고 또 참는, 누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한 달에 한 번씩 앓아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고서는 더 이상 여선생님들의 주장이 과격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배려해주는 진정한 노력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가를 어른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꾸만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