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쌀, 살, 삶 그리고 나눔과 지킴..
사회

[시가 있는 마을] 쌀, 살, 삶 그리고 나눔과 지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09/10 00:00 수정 2004.09.10 00:00

 고향에서 농사짓는 큰형님이 올해 환갑이라 청년회에서 나왔다고 한다. 회갑 전이면 다 청년이라는 말이다. 농촌에 청년이 아예 없다는 말이다. 힘만 들고 돈 안 되는 농사지으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정말 아득한 옛이야기다.
 
 9월 9일. 목요일. 늦은 6시. 중앙동 사무소 <생명평화사상 탁발 순례단과 간담회>, 9월 10일. 늦은 6시. 양산터미널 앞. <우리 쌀 지키기 시민대회>
 
 생명평화탁발순례는 생명평화의 문제인식과 논리로 만남, 대화, 소통을 통해 이해와 존중, 배려하는 풍토를 가꾸고 너와 나, 남과 북, 인간과 자연간의 갈등과 대립을 풀어낼 수 있는 문화를 가꾸려는 사람들이 온몸으로 사랑을 나누는 실천이다. 이런 순례단과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9월 10일은 우리나라의 농촌과 농업을 WTO의 개방 압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멕시코 칸쿤에서 목숨을 던진 농민운동가 이경해 열사 1주기다. 이 열사가 죽음으로 몸을 던져 항거한 덕으로 WTO협상이 1년 늦추어져 올해 재협상한다.
 
 아침에 분회장한테서 쪽지가 왔다.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이 가자고 한다.
 
 
 후레새끼! // 십이 년 만에 만난 아버지는 / 거두절미하고 귀싸대기부터 올려붙였다 / 이놈아, 어쩐지 제삿밥에 뜬내 나더라 / 지독한 흉년 들어 정부미 타 먹느라 / 똥줄이 타는 줄 알았더니 / 어허야, 네놈이 귀신눈을 속였구나 / 이런 쳐 죽일 놈! 머라꼬? / 쌀농사는 돈이 안 된다꼬? / 물려준 땅 죄다 얼라들 주전부리나 할 / 복숭아 포도 그딴 허드렛농사만 짓고 / 뭐 쌀을 사다 처먹어? / 그것 참, 허허 그것 참 // 이노옴, 내 논, 내 밭 다 내놔라아!
 이중기의 <통쾌한 꿈> 전문
 
 
 '이런 쳐 죽일 놈! 머라꼬? 쌀농사는 돈이 안 된다꼬? 물려준 땅 죄다 얼라들 주전부리나 할 복숭아, 포도 그딴 허드렛농사만 짓고 뭐 쌀은 사다 처먹어?'한다. 철저한 실리주의에 빠진 우리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말이다. 돈만 된다면 뭐든 못 바꿀까.
 
 식량 자급률 : 한국 29%, 미국 134%, 캐나다 163%, 프랑스 195%
 
 그 결과가 이렇다. 이래서야 식량안보가 가능할까.
 
 "우리 7남매 중 큰형님과 큰누님만 농사를 짓고 그 중 큰누님 댁만 쌀농사 조금 지으니 쌀 싸게 사 먹을 수 있으며 좋지 뭐." 이런 이기적 생각에 빠지기도 했지만 나라나 조상까지도 돈만 된다면 팔아먹지 않겠느냐는 의구심 때문에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머리 희끗할 자기 아들에게 '후레새끼!’라며 거두절미하고 귀싸대기부터 한대 올려붙이는 이중기의 시를 읽으며 시퍼렇게 살아 있을 조상의 호령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라진 민족적 자존심과 주체성을 이보다 통쾌하게 일깨우는 호령을 어디서 들을 것인가. 정말 귀싸대기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시다.
 
 쌀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살이다. 그리고 우리 삶 그 자체다. 나눌 것은 나누지만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쌀시장까지 문을 열어버리면 우리 농촌에서 쌀농사 지을 수 있는 집이 몇 집이나 될까. 그리되면 쌀농사 짓던 늙은 청년들이 새로 무슨 농사를 짓고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언젠가 문 열게 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아직은 아니다. 생명과 삶을 나누기 위해서라도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 촛불 하나 드는 심정으로 10일 저녁엔 양산터미널로 나가봐야 한다.
 
 순례단 가운데는 정해숙 전 전교조 위원장도 있고 언젠가 늦은 밤 지리산에서 통도사까지 달려왔던 지리산 시인 이원규도 있다.
 
 10일에는 아버님 호통 소리 때문에라도 양산 터미널로 나가야 한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