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가 시대적 요구임에도 그 반대 논리 또한 워낙 뜨겁고 거세 그동안 이를 둘러싼 국력낭비가 여간 크지 않았던 터에 이 문제에 있어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가집단이라 할 수 있는 전국의 형사법 전공교수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지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국가 근간에 관련된 법률의 존ㆍ폐를 두고 전문가집단은 철저히 배제한 채 이를 한낱 정쟁의 수단으로만 삼아 온 정치권은 한국형사법학회, 한국형사정책학회,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등 1천여명의 교수들을 아우르는 주요 세 학회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할 일이다.
이들 학자들은 보안법은 한시적 법률로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를 폐지하더라도 법률 공백이 발생할 여지가 없으며, 유엔을 포함한 국제기구도 폐지 당위성을 주장하는 점 등을 들어 폐지가 마땅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동안 폐지 반대론자들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면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위태로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보안법 폐지는 한사코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대해서도 학자들은 국가 안보문제도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으며 '국가보안법 폐지는 곧 무장해제'라는 논리는 이론적 근거가 없는 '감성적 호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보안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법리적 해석도 보태고 있다.
한나라당이야 당의 존립기반이 국가보안법에 있다고 강변하고 있는 터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치더라도, 열린우리당은 도대체 어찌하자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뒤 '형법개정'이냐 '대체입법'이냐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 10일 만들어진 '국가보안법 폐지 태스크포스'가 갑작스레 해체된 것이 회의석상에서 일부의원들을 중심으로 '왜 폐지해야 하느냐'는 생뚱맞은 발언이 되풀이 된 데 있다니, 이 정당이 과연 '개혁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의 집단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한나라당의 반대가 아니더라도 이 법의 폐지가 이토록 시간을 끌고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겠다 싶다.
국가보안법이 그동안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를 위한 수단으로 기능해 온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고 이른 시일 안에 이 문제의 매듭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이번에 법학자들이 작심하고 내놓은 해석과 주장을 귓등으로만 흘리지 말고 향후 이 문제에 마침표를 찍는 실마리로 삼았으면 한다. 우선 여당인 열린우리당부터 대오각성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