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딸아이가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잘한 아이들에게 스티커를 주셨다. 스티커를 20장 이상 모은 아이들에게 학기가 끝나는 날 자장면을 사주시겠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학기가 끝나는 날 몇 명의 아이들을 선생님이 호명했고, 그 아이들과 중국요리집에 간다고 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잠깐이지만 가슴이 아팠다.
딸에게는 ‘응 그랬어?..’ 하면서 다음 얘기를 잇지 못하고 아이의 눈치만 살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딸아이의 마음이 별로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아이를 보면서 다행인지 아닌지,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그 다음 묻고 싶었던 말을 해야 할지 참아야 할지 잠깐 고민을 했다가 그만두었다.
‘나쁜 어린이표’(권사우, 황선미 지음/ 웅진닷컴 펴냄)가 처음 출판되었을 때, 이 책은 학부모와 선생님이 꼭 읽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나쁜 어린이로 만드는 것도 문제아로 만드는 것도 모두 우리 어른들이 저지르는 잘못이기 때문이다.
“‘2분 정신’을 가진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인내나 심사숙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어른들이 잘못한 결과이므로 아이들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인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채널을 바꾸거나, 부모에게 학교를 고소하라고 애원합니다” - 제인 힐리 박사의 <위기에 처한 정신>
케이블 방송, 컴퓨터, 비디오, 게임기 등 고속 미디어에 길들여져 있고 많은 자극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칠판을 보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강요하는 수업시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
라디오를 청취하던 세대의 교육과 멀티미디어 세대의 교육은 엄청나게 많이 달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 때의 교육과 지금의 교육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디지털 세대들에게 아날로그 세대의 부산물을 고스란히 전하려고만 한다.
그러니 선생님이 상대하기 힘든 아이들은 문제아나 나쁜 어린이로 분류가 되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재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못하는 애’로 스스로 단정 짓게 만들고 자기의 재능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저 그런 아이로 그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사회를 탓한다. 많은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몰아놓아 단 한명의 교사가 감당할 수 없게 만들어 놓고 더 이상 무엇을 바라느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많은 아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나쁜 어린이표든 착한 어린이표든 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되지 않는 현실임을 절감하면서 이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학부모의 입장에서 바라자면, 그래도 나쁜 어린이나 문제아로 취급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선생님께 하게 된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아이들이 다투면서, 그 과정에서 타협도 하면서 아이들이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곳이 바로 학교인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커로 인해 아이들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면 그냥 내버려 둬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의 생각을 듣고,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상대의 말을 다시 듣고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내 생각을 조리 있게 설명해서 상대를 설득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교실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말다툼으로 보고 제지하고 혼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특히 요즘 아이들에게는 시각적인 학습방법을 다양하게 이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런 것들을 귀찮게 생각하는 선생님도 많은 것을 볼 때, 직업을 다만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실정을 다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동화를 통해 우리 학교의 문제를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어 대안도 마련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유내영 / 동화읽는어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