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역사 속의 오늘] 그날은 나라가 흑암의 시절로 들어가는..
사회

[역사 속의 오늘] 그날은 나라가 흑암의 시절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0/15 00:00 수정 2004.10.15 00:00

 그날, 10월 17일을 아시는가? '막연히 10월 17일이라니 그 무슨 생뚱맞은 소린고?' 하는 이 있다면, 그럼 1972년 10월 17일을 아시는지 또 물어 보겠다.
 세상사는 일이 버겁고 힘겨워 지나간 일들을 어찌 죄다 기억하고 살겠느냐만, 그래도 32년 전 그날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된다.
 그날, 1972년 10월 17일은 5.16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이 나라 민주주의를 압살한 박정희가 일인 장기집권과 권력 강화를 위해 이른바 '10월 유신'이라는 초헌법적 조치를 단행한 바로 그날이다.
 군부대를 동원하여 헌법기능을 마비시키고 야당은 물론 여권 안의 반대파들까지 정치활동을 원천 봉쇄시킨 그 조치는 5.16에 이은 또 다른 쿠데타나 다름없는 짓이었다.
 박정희, 그는 말했다.
 "현행 헌법하의 정치체제가 가져다준 국력의 모순과 낭비를 지양하고 이를 조직화하여 능률의 극대화를 기하며 민주주의의 한국적 토착화를 가능케 하는 유신적 개혁을 단행하는 것만이 국가의 안전과 조국 평화 통일을 기약하는 유일의 길"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이었다. 10월 유신은 이미 뒷걸음치고 있던 한국의 민주주의를 완전히 거꾸로 돌려 세우고 군부독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이 나라를 본격적으로 흑암의 시절로 접어들게 한 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직선제이던 대통령직을 그의 허수아비 기관이었던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선거로 임명하는 간선제로 바꾸었고, 국회의원의 1/3을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대통령이 원할 경우 헌법까지도 쉽게 뜯어고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으니 사실상 대통령이 입법ㆍ사법ㆍ행정의 3권을 움켜쥘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10월 유신은 대통령 박정희의 종신집권을 위한 정략적 조치였지 그가 겉으로 내건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대의명분과는 동떨어져도 한참 동떨어진 것이었다.
 결국 그가 추구하던 권력의 일인 장기화는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의 총성으로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1979년 그날로부터 세월은 흘러 어느새 25년이 지나왔건만, 그 유신의 떨거지들이 아직도 정치판을 휘젓고 다니면서 개혁과 변화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고 있으니, 한번 삐끗한 역사를 바로 일으켜 세우는 일은 이리도 어렵고 고달프단 말인가.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