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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詩가 있는 마을] 영축산을 오르며..
사회

[詩가 있는 마을] 영축산을 오르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0/15 00:00 수정 2004.10.15 00:00

 수만, 어쩌면 수백 만 개의 바윗돌들이 첩첩이 덧쌓인 너덜(다랑)을 따라 올라가는 백운암 가파른 길이 제법 숨을 턱턱 막았다. 동료들이 저만큼 앞서 오르다 기다리고 있다.

 "먼저 올라가세요. 몸무게만으로도 벌써 한 짐 진 난, 내 호흡대로 올라가야 정상까지 가지 호흡 놓치면 안 돼요."

 "그럼 천천히 오세요. 백운암에서 기다릴게요."

 너덜 중간쯤인데 몸 가벼운 정 선생은 벌써 보이지 않고 무거운 배낭까지 진 강 선생도 벌써 너덜을 벗어나고 있다.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고 호흡에 맞추어 보폭을 줄이며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갔더니 비슷한 시간에 백운암에 닿았다.

 탁 트인 전망이 좋다. 세상이 눈 아래 쫙 깔렸다. 여기가 정상이라면 좋겠다.

 땀 식히고 찬물 한 모금으로 입술 적시고 다시 맨 뒤에 섰다. 백운암 길 중에서 가장 가파른 고비를 넘어서니 정 선생은 아버님 해소천식에 드시는 약 달이는 것에 더할 산죽잎 한 줌 따고 난 다음 따라 오겠다고 한다. 강 선생은 디카로 단풍들기 시작한 영축산 대마등을 찍고 있다. 쉬고 싶었지만 같이 쉬었다가는 따라가기 힘들 것 같아 내 호흡에 맞추어 올라갔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서는 보폭을 줄이고 덜한 곳에서는 보폭을 좀 늘이는 방법으로 계속 오르다 보니 한피고개다. 고개 뒤쪽 배내골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단풍이 한창이다.

 한피고개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대마등은 인근에서는 보기 힘든 바위벼랑이 한쪽으로 뚝 떨어진 길로 연이어 있다. 둥근 원의 반만 보이던 시야가 고개에 올라서며 앞뒤로 트이더니 마침내 360도 둥글게 탁 트인다. 한참 뒤에 올라온 정 선생이 올라오면서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를 했다며 환하게 웃는다.

 사람 사는 것이 이렇지 싶다. 빠르게 쑥쑥 잘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의 힘의 총량은 비슷하다. 짧은 거리를 토끼처럼 재바르게 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소걸음이지만 천리까지 갈 수 있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특별한 사람이어야 올라갈 수 있는 세계적 고봉은 없다. 다 그만그만한 산이다. 마음 굳게 먹고 길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면 다 오를 수 있는 산들이다. 세계 최고를 추구하는 목표라면 달라지겠지만 그냥 사람이 추구하는 목표라면 방향 바로 잡아서 길 잃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면 좀 먼저 닿고 나중에 닿을 뿐, 다 목표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초발심을 잊지 않고 얼마나 견지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것이다.
 
 "사람들이 개미보다 작죠?"
 "그렇네요. 우리 학교가 라이터보다 작게 느껴지네요. 저 작은 곳에서 아옹다옹하며 다 저는 잘났죠."
 

 높은 산에 올라 구름 아래 마을을 보면 / 사람과 마을이 저리 하찮다 / 그러나 산을 처음 올라본 사람이 아니라면 / 이런 결론에 고개 끄덕이지 않는다 // 저것이 저리 하찮은 게 아니라 / 천지가 저리도 크다 / 우리가 살다 가는 곳이 티끌보다 작고 짧으나 / 그것도 한 세상 천지의 조각도 천지 // 마음의 넓은 자리에 올라서 보면 / 삶이나 역사나 인간의 능력이 저리 하찮다 / 그러나 처음 내려다본 사람이 아니라면 / 영원의 조각도 영원이라는 것을 알리라 // 다만 티끌만큼 작은 세상에 사는 내가 / 산 위에 사는 나에게 나날이 들키며 산다 / 그 일도 지겨워 / 숲으로 나는 간다

 백무산의 <숲으로 간다> 전문
 

 작고 하찮은 그 자체가 바로 삶일 것이다. 또한 삶이란 그렇게 작고 하찮은 것이면서도 영원 그 자체 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하고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정상의 자리에 잠시 섰다가 곧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산 위의 나에게 매일 들킬 하찮은 티끌만큼 작은 세상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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