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하늘에 울려 퍼진 몇 발의 총소리.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꿔놓는 중대한 사건이었다.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 1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나라의 권력을 틀어쥐었던 박정희. 그 기나 긴 세월 동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초법적인 권력으로 나라를 다스렸던 박정희. 그런 그가 이날 그의 동료이자 심복이었던 김재규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러나 그랬다고 군부의 철권통치가 그대로 막을 내렸던 것은 아니었으니, 뜬금없이 나타난 또 한 사람의 군인, 전두환.
그의 앞 사람 뺨치는 공포정치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13년의 긴 세월을 이 나라의 백성들은 또 오금이 저리는 세월을 살아야만 했다.
그건 그렇고, 그런데 김재규는 왜 자신의 오랜 동지이자 상관이었던 대통령에게 총질을 하였을까?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 한 사나이의 구국적 결단? 최고 권력층 내부의 갈등에서 빚어진 우발적 사건?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를 제거하려 했던 미국의 사주? 죽은 자는 말이 없고 국민들은 궁금증을 풀길이 없었다.
다만, 당시 새로운 실력자로 등장한 전두환의 신군부에 의해 일사천리로 재판이 진행되면서 김재규는 '오로지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자신의 상관인 대통령을 살해한 패륜아'로 단정 지어졌다. 그리고 신군부는 김재규와 그를 따랐던 사람들 모두를 서둘러 사형에 처해 버렸다.
당시 변호를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수사나 재판과정 자체가 진실 찾기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하면서 “비록 그가 사람을 죽인 죄인이지만, 유신의 공포정치와 정보정치를 타파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걸었던 사람”이라면서 신군부 세력에 의해 가려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역사적 검증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역사적 검증, 그래 역사적 검증을 확실히 해야 할 일이 어디 이 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