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 매카시, 미 공화당 상원의원이었던 그는 1950년 2월 연설을 통해 "미국 국무성안에 많은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발언을 했다 지금 현실에서는 근거없는 소리라고 치부되겠지만 당시는 2차 대전 종전 이후 한국전쟁 등 공산주의자들과 국제적 전쟁 혹은 경쟁에 들어가던 상황.정부는 국내 반공체제 확립을 위해 매카시의 발언을 이용했고 언론은 이를 확대 보도해 공산주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부추겼다.
결국 미 전역에 McCarthyism이라고 불리는 광신적 반공주의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이후 54년까지 비미(非美)위원회를 무대로 한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이 끝날 때까지 미국은 그야말로 이성을 상실한 사회였다.그의 빨갱이 사냥은 오늘날의 한국 '극우주의자'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매카시는 '반공'이라는 껍데기를 방패삼아 진보적 지식인들과 노동조합원들을 '빨갱이'로 몰아갔다.
그러나 브레이크 없는 매카시의 '빨갱이 사냥'은 육군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멈추고 말았다. 그는 '육군' 내부에 빨갱이들이 판을 친다는 선동을 한 것이다.결국 국민들은 매카시즘이라는 광풍에서 벗어나기 시작했고 국민들의 '공포'를 연료로 작동하던 매카시즘은 점점 그 영향력을 잃기 시작해 결국 온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1954년 상원의 사문결의에 의해 매카시는 실각했다. 매카시 실각 이후 FBI의 조사결과 매카시즘은 오히려 반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자유국가는 그날의 광풍을 다시는 되풀이지 하지 말자는 뜻으로 '매카시즘'이라고 부르며 경계해오고 있다.그러나 '한국'은 아직도 '매카시즘'의 천국이다. 매카시가 다시 살아나 한국사회를 본다면 아마 '파라다이스'라고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수구언론이라 불리는 메이저 신문들과 일부 정치인들이 '색깔론'을 들먹이며 '빨갱이 사냥'을 하고 있는 한국 사회. 200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190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 불어 닥친 '광풍'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