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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욕심 한 짐..
사회

[시가 있는 마을] 욕심 한 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0/29 00:00 수정 2004.10.29 00:00

 집사람이 두 친구랑 드라마 '겨울연가'를 찍었던 춘천 남이섬에 간 지난 일요일엔 아이들 둘 데리고 창녕 화왕산에 갔다. 가면서 이제 억새 축제도 끝났으니 좀 덜 복잡하려니 했는데 인파에 묻혀서 올라갔다.
 제2등산로 쪽은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복잡하다. 몰려든 인파 때문에 먼지가 자욱해서 숨쉬는 게 고역이었다. 좋은 공기 쐬려 왔다가 이 무슨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말들이 들려왔다.
 산 능선을 타는 길은 짐승처럼 네 발로 기기도 하고 무거운 몸으로 줄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올라가기도 해야 했지만 탁 트인 시야에 들어오는 화왕산 암벽이 눈에 들어와 힘든 것 상쇄하고도 남았다.
 목화는 자세히 뜯어보지 않으면 꽃은 그리 드러나지 않다가 솜꽃 피었을 때 멀리서 보면 구름 벌판처럼 아름답지만, 억새는 아직 잎줄기가 푸를 때 눈부시게 희고 반짝이는 꽃을 피울 뿐 아니라 꽃 지고 난 다음 피운 솜꽃도 장관이다. 그런데 정상이 건너다보이는 배바위에서 내려 본 5만 평 억새밭에는 사람들만 개미떼처럼 바글거릴 뿐 철 지난 탓인지 억새밭은 그냥 갈색으로 눈부신 솜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철 다 지난 다음 찾은 탓이려니 하며 억새밭 사람들 무리 속으로 내려가다가 뒤돌아보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역광 속에 드러난 억새 솜꽃이 숨을 턱 막을 듯 눈부시게 찬란하다. 보는 방향에 따라 이렇게 다르다. 딸애와 작은놈이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감탄을 하며 연신 사진에 담는다.
 "그런데 아빠, 이 억새꽃 축제를 신문에서 보니 아직도 '갈대제'라고 하던데. 괄호 해서 '억새 축제'라 붙여 두기는 했지만."
 "잘못된 이름이지만 이미 전국적으로 알려진 이름이니 바꾸는 게 쉽지 않겠지. 하지만 다음에는 '억새 축제'라 하고 괄호 안에 '갈대제'를 넣었다가 아주 '억세 축제'로 바뀌겠지 뭐."
 사실 억새와 갈대는 조금만 자세히 보면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아직 많은 사람들은 억새도 갈대, 갈대도 갈대라 한다. 억새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일이다. 하긴 신경림 시인까지도 자신의 출세작인 <갈대>를 쓸 때 사실 억새를 갈대로 알고 썼다고 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 조용히 울고 있었다. /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 까맣게 몰랐다. //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 그는 몰랐다.
 신경림의 <갈대> 전문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억새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로 바꾸어 읽어보면 달빛 속에서 억새가 바람도 없는데 그 환한 모습을 한 채 속으로 울음을 삼키느라 흔들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흐릿한 달빛 속에 갈색의 갈대가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훨씬 사실적이고 아름답다.
 "그런데 아빠, 저 아저씨, 아줌마들 여기까지 와서 고기 구워먹어야 할까? 보기 흉하다."
 그러고 보니 시끄럽고 지켜야 할 기본예절 지키지 않는 것은 나이든 사람들이 더하다.
 웰빙 바람일까. 산에 4-50대가 참 많다. 쏘아 놓은 화살처럼 가는 세월 속에서 건강까지 잃으면 억울하지 않을까. 화살나무 단풍처럼 늙어가며 고와지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욕심 한 짐 지다가 생각하니 또 부질없다.
 
 화살 나무 푸른 나뭇잎이 늙어 / 고운 단풍이 되듯 / 늙어 더 아름다워졌으면 하는 // 욕심 한 짐 // 수수수 / 성근 그늘 아래 휩쓸려 간다
 졸시(拙詩) <낙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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