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광명중학교 교정. 번뜩이는 예복을 차려입은 일본군 장교가 학생들에게 군 입대를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는 군에 입대하는 것이 장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다" 자신의 모교에서 군입대를 종용하는 이 사람이 바로 훗날 '한국의 부도옹(오뚝이)'으로 불리게 되는 정일권이다.
그는 일본 육사를 수석 졸업해 일본인도 들어가기 힘든 만주군 육군대학에 근무하며 그 특권으로 화려한 견장을 단 승마를 타고 출퇴근 하는 등 조선인 출신 일본군중 가장 잘나가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일제의 패망이 짙어지자 그는 같은 일본군 출신인 원용덕, 이한림 등과 함께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뻔뻔스럽게 '동북지구 광복군 사령부'를 만들었다. 이후 소련유학을 준비하다 시험에 탈락, 다시 미군이 설치한 '군사영어학교'에 입학했다.
이렇듯 일본, 소련, 미국을 넘나드는 묘기를 보여준 정일권은 이승만과 미국의 신임을 얻어 50년 3군 총사령관 겸 육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돼 미국에게 작전권을 전부 이양하는 수치스러운 '대전협정'을 체결했다.
군 최고 지휘관으로서 자군의 작전권을 선뜻 내놓은 것이다.
군 예편 이후 그는 외교관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러다 5.16쿠데타가 발생하자 박정희의 부름을 받아 미국대사로서 쿠데타세력의 '친미'성을 설파하러 뛰어다녔다. 그렇게 미국을 설득해 박정희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은 정일권은 정치권에 들어가 박정희의 충성스런 신하가 되어 최장수 국무총리(6년7개월), 최장수 국회의장(6년)의 화려한 신기록을 세운다.
그후 박정희 독재의 얼굴마담으로 김두한의원에게 오물세례를 받고 정인숙사건의 주인공으로 거론되는 등 그의 처세와 부패에 관련해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다.
정일권 그를 보면 한국사회가 보인다. 한국사회는 그를 '성공인'으로 만들었다. 오로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군 장교로 입대한 그를... 또다시 소련, 미국, 독재에 붙어 국민을 억압으로 내몰았던 그를... 한국사회는 '성공인'이라 평가한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민주화 운동가들은 가난에 몸부림치며 다시는 민족과 민주를 위해 나서지 않겠다는 독한 다짐을 하고 있다.
이런 한국사회를 보고 그 누가 '성공적'인 사회라고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