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에 깜박 잊고 주머니에 넣어둔 손전화로 전화가 와서 급히 껐다가 쉬는 시간에 그 번호로 전화를 했더니,
"당신, 나 죽으면 따라 죽을 거야?" 한다.
"무슨 소리야."
"그냥 대답해 봐."
"당신 원하는 대답이야 '당연히 따라 죽지' 하는 것이겠지만 쉽게 대답 못하겠네. 상황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
"따라 죽기 싫다는 말이구나."
"당신도 죽고 나도 죽으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도종환의 시를 생각해 봐. 내 죽거든 당신은 꿋꿋하게 살아야 해."
견우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 살아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주고 /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게 나눠주고 /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되어 /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 내 남아 밭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도종환의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전문
안개꽃 같은 아내를 묻고 온 날이 하필이면 견우직녀도 일년에 한 번 만난다는 '칠석날'이다. 호강은 고사하고 변변한 옷 한 벌 못해주었는데 아내는 이미 은하 저쪽으로 건너갔다. 아내와는 하늘과 땅 사이로 헤어졌다.
하지만 오늘은 '칠석날'이다. 새로운 만남으로 열수 있는 날이다. '아내'가 죽어 '흙'이 되고 '내'가 죽어 '바람'이 되어 견우와 직녀처럼 다시 만나게 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섣불리 감상에 젖지 않고 그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옮겨낸다.
"난 그 시 싫어."
"왜?"
"사이가 나빴던 사람은 상대에게 질려서 잘 재혼하지 않지만 금슬이 좋았던 사람일수록 배우자에 대한 기대 때문에 한 편이 죽으면 빨리 재혼한데. 그러고 보니 <접시꽃 당신>을 썼던 도종환 시인도 곧 재혼했지? 당신은 나 먼저 죽더라도 재혼하지 마. 따라 죽지는 않더라도."
"참, 그런데 별안간 왜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당신, 못 봤어? 시조 시인 이상옥인가? 김상옥인가? 원로시인이라던데. 부인이 죽자 따라 죽었다고 인터넷이랑 텔레비전에 크게 나와."
"김상옥 시인이 순애(殉愛)했다고? 나이 참 많은데. 아마 여든 대여섯은 되었을 걸?"
"노년에 낙상(落傷)해서 휠체어에 의지해 보내는 시인을 15년이나 분골쇄신(粉骨碎身) 돌보던 아내가 덜컥 병석에 눕자 '자네를 전생에서 본 것 같네. 우리 이생은 다 끝났나 보네.'라고 독백했다던데. 어쩌면 짐이 되지 않으려고 곡기(穀氣) 끊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지금은 정말 순애보(殉愛譜)에 목마른 세상이라 순애(殉愛)네 뭐네 하지만 이런저런 말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
"곡기를 끊어 따라 죽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도 그런 상황이면 당신 따라 죽을 거야. 살아서 주변에 짐밖에 더 되겠어."
"아내에 대한 사랑 노래 생각나는 것 있어?"
"누구?"
"누군 누구야. 김상옥 시인이지."
"흠~. 그런데 김상옥 시인의 대표작 중에는 아내 사랑에 대한 시로 떠오르는 게 없네. 시집간 누님을 그리는 <봉선화>나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는 <사향> 같은 것은 유명한데. 아마 옛사람이라 그럴 거야. 아내를 정말 깊이 사랑했다 하더라도 그 사랑을 노래했다가는 팔불출로 불렸을 테니까."
"난 당신 죽으면 혼자 못 살아. 지금도 혼자서는 잠도 못 자는데."
"바로 재혼하겠다고?"
"혼자서 더 살고 싶은 마음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