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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역사속의 오늘]1905년 11월20일,..
사회

[역사속의 오늘]1905년 11월20일,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1/19 00:00 수정 2004.11.19 00:00

 '是日也放聲大哭'
 무슨 말인가? 풀이하자면, '오늘 목 놓아 크게 우노라'이다. 이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이틀 뒤인 1905년 11월20일자 황성신문에 실렸던 이 신문사 사장 겸 주필 '위암 장지연'의 논설 제목이다.
 그렇다면 장지연은 왜 그토록 목 놓아 크게 울어야 했던가?
 을사조약은 당시 우리 조정의 외부대신이었던 '박제순'과 일본 공사 '하야시 곤스케' 사이에 체결된 조약.
 생각 없는 이들은 이 조약을 일러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라 부르지만, '보호'란 저들 일본이 내세우는 얄팍한 명분일 따름이고 사실은 저들의 강압에 의한 치욕의 조약, 즉 '늑약(勒約ㆍ억눌러서 이루어진 조약)'이었던 것이다.
 공식적 한일합방은 이보다 다섯 해 뒤의 일이지만, 이로써 한국의 대외교섭권이 박탈되어 외국에 있던 한국외교기관은 모두 폐지되었고 동시에 주한외국공사관들도 철수하였다. 1906년 2월에는 서울에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초대통감으로 부임한 이토는 본래의 규정인 외교사무뿐만 아니라 내정 전반에 걸치는 명령ㆍ집행권도 행사하였다
 그러니, 비단 장지연이 아닌들 이 땅의 뜻있는 겨레붙이치고 그 누가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있었으랴!
 "아,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득을 바라고 덧없는 위협에 겁을 먹어 머뭇거리고 벌벌 떨면서 나라를 파는 도적이 되어, 4천년 강토와 5백년 종사를 다른 나라에 바치고 2천만 생령(生靈)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이렇듯 서릿발 같은 논조로 당시의 조정대신들을 꾸짖었던 위암 장지연-
 그러나 그런 장지연도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흐른 1915년에서 1918년 사이 조선 총독부 기관지이던 '매일신문'에 쓴 글들을 통해 '동양 평화를 위해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등 일본의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는 친일 논지를 폈다는데, 한번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는 있었어도 평생을 일관되게 살기가 그리도 어렵더란 말인가. 참으로 슬프고도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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