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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마파람의 행복나누기] 차이를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
사회

[마파람의 행복나누기] 차이를 수용하는 것이 진정한 평등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1/19 00:00 수정 2004.11.19 00:00
부부 평등비율 5:5가 아닌 7:3

 평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권리를 똑같이 나누고 차지할 몫을 반분하는 것, 다시 말해 5:5의 정확한 분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부부평등의 '황금비율'을 5:5가 아닌 7:3쯤이라고 본다.
 잠깐, 여기서 굳이 7:3이라 했지만 7:3이든 8:2든 수적 대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냥 내가 좀 많이 베풀려는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뜻으로 든 예일 뿐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일곱 또는 여덟을 주고 상대방에게서는 다만 셋이나 둘만 받겠다는 생각으로 결혼 생활을 꾸려 가면, 그런대로 원만한 결혼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불평등의 조화랄까. 이를테면, 아내가 한 개 더 먹어도 그것으로 내 마음이 넉넉하고, 아내보다 내가 한몫 일을 더하고도 내 마음이 흡족할 수 있는 것이 부부관계의 묘미다.
 
 요즈음에는 재산도 부부 공동 명의로 등기하고, 부부 사이의 역할을 명확하게 명시한 이른바 부부계약서를 주고받음으로써 첫 출발부터 '똑 소리' 나게 시작하는 신세대 부부들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나는 굳이 재산관계를 분명히 하고 일의 몫을 똑같이 나누거나 책임을 반분하는 것을 부부 사이의 평등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행여 나중에 헤어질 때를 미리 대비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이승의 삶을 거쳐 영원까지도 함께 가려는 사이라면 알량한 재산 나부랭이쯤이야 남편의 이름으로 되어 있으면 어떻고 아내의 이름으로 되어 있은들 무슨 상관이랴. 어차피 아내의 것이 남편의 것이고 남편의 소유가 아내의 몫일 텐데 말이다.
 
 부부 사이의 역할분담도 그렇다. 늘 아내가 하던 일이라고 남편이 못할 리가 없을 테고 남편의 책임 분야를 아내가 떠맡았다고 크게 탈날 일은 없을 것이다.
 
 인간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 중에는 '차별'과 '차이'를 혼동하는 이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 이를테면 여자라는 이유로 남자와 다른 대우를 받는다든지, 남자이기 때문에 부당히 배척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진 것의 많고 적음으로, 또는 신분의 높낮이나 출신지역이 어디냐로 인간이 차별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상대방이 지니고 있는 나와 다른 생각을 높이 사 주고 각각의 개성을 인정해 주는 것은 물론, 상대방의 약점까지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비단 부부관계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를 향상시키는 훌륭한 미덕이다.
 
 나는 잘 할 수 있지만 아내는 잘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아내가 잘 하는 것을 내가 못 할 수도 있다. 아내는 마른 반찬을 좋아하지만 나는 국물 있는 음식을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차이점이 서로에 의해 존중되고 받들어 질 때 비로소 가정에서의 민주주의와 평등이 실현된다는 사실을 믿고 살다 보면 처음에는 멀게만 느껴지던 차이점도 나중에는 차츰 그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결혼생활이다. 그래서 부부는 살아가면서 서로 닮아 간다고 하였던가.
 
 나는 결혼생활을 각기 다른 두개의 개체가 만나 부부라는 그릇 속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아내는 어릴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무용을 해 왔지만, 내게 시집와서는 나와 더불어 연극을 하고 동화구연과 시낭송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보수적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던 아내가 나를 만나고부터는 정치현실에 꽤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아내가 남편인 나를 따라 온 케이스다.
 
 탐정ㆍ추리소설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던 내가 '애거시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 된 것은 순전히 아내의 영향 탓이다. 시집 올 때 한 아름 싸지고 온 아내의 책 무더기 속에 '애거시 크리스티 전집'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다가 있는 부산에서 나서 자라면서도 바다의 좋은 점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는 바다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아내가 바다 예찬론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 살아가면서도 좀체 일치하지 않는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예컨대 아내는 감정이 섬세하여 어쭙잖은 일에도 쉽게 눈물을 보이지만 나는 여간해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내더러 감정이 너무 헤프다고 탓하지 않는 것처럼 아내 역시 나보고 감정이 무딘 사람이라고 핀잔을 주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지니고 있지 못한 것을 아내가 지니고 있으므로 그만큼 내 생활이 풍요로울 수 있고 아내에게 없는 것을 내가 가지고 있어 아내의 삶을 넉넉하게 해 줄 수 있을지 모를 일 아닌가.
 
 차별은 마땅히 배척할 일이로되, 차이는 당연히 존중되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나의 아내 또는 나의 남편이 지니고 있는 나와의 다른 차이점을 굳이 어려운 문제점으로 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일찍이 내가 체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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