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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역사속의오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제 몸을 불사르다..
사회

[역사속의오늘]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제 몸을 불사르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1/19 00:00 수정 2004.11.19 00:00

1970년 11월 1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차가운 바닥에 23살의 한 청년이 자신의 몸에 시너(thinner)를 뿌리고 제 몸에 불을 붙인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 기준법 보장하라”를 외치며 쓰러진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청년은 다음날 병원에서 숨을 거둔다.
 전태일- 한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죽음으로 저항한 그는 전태일이었다.
 그 시절은 박정희 정권의 서슬이 한창 시퍼렇던 시절, 경제성장과 개발이란 미명으로 노동자들의 인간적 삶을 착취하던 불평등의 시절이었다.
 사악한 권력이 날마다 경제성장을 나발 불며 백성들을 후려치고 있었으나, 그들이 노래하는 경제성장이란 무한착취와 정권유지의 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청계천의 닭장 같은 작업장에서는 십대 어린 여공들이 졸음과 싸우고 폐결핵에 시달리며 14시간 이상의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었던 그 춥고 캄캄했던 시절, 이 땅의 어린 딸들은 인간이 아닌 한낱 기계 부속품일 따름이었다.
 아직도 부모의 응석받이로 어리광이나 부리며 한참 꿈에 부풀어 있을 어린 여공들의 하루 임금은 당시 커피 한잔 값인 50원, 돈벌어 공부를 하고 싶었던 전태일에게 동생 같은 여공들의 현실은 남의 일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차비를 털어 산 풀빵을 점심을 먹지 못한 여공들에게 나눠주고 그러다 곧잘 통금에 걸려 유치장 신세를 지기 일쑤….
 폐병으로 쓰러져 길거리로 내몰리는 누이들을 보면서 사회적 모순을 깨닫게 된 전태일은 청계천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뜻을 함께한 노동자들을 모아 '바보회'와 '삼동회'를 결성, 근로기준법의 이행을 요구하며 노동청과 신문사를 찾지만 전태일과 청계천의 노동자들을 기다리는 것은 차디찬 냉대뿐이었다. 결국 그는 오랜 고뇌 속에 자신의 몸을 불태워 인간의 삶을 빼앗긴 노동자들의 현실을 몸으로 말한다.
 전태일이 제 몸을 불사른 지 어느새 34년, 꿈 많던 한 아름다운 젊은이가 인간다운 삶을 외치며 한 줌의 재로 사라진지 34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전태일이 꿈꾸었던 아름다운 세상은 아직도 아득하고, 오늘도 여전히 가진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세상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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