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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문화초대석]늦깎이 시인 박건수를 만나다..
사회

[문화초대석]늦깎이 시인 박건수를 만나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1/19 00:00 수정 2004.11.19 00:00
"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요"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많아 '예향'이라 불리어왔던 양산에 최근 또 한 사람의 시인이 탄생했다.
 청암 박건수[淸岩 朴健洙]- 그러나 오십대 말, 육십 고개를 바라보는 이 이가 이제사 느닷없이 시인이 된 것은 아니다.
 <월간 한맥문학> 11월호 '신인문학상'을 통해 비로소 시인이란 꼬리표를 달고 정식으로 시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양산과 부산의 문학동네에는 박ㆍ건ㆍ수라는 이름 석자가 이미 알려졌던 터이다.
 남부동에서 새길주유소를 경영하고 있는 시인 박건수는 양산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양산 토박이는 아니지만, 양산살이가 어느새 8년이나 돼 양산의 양산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아울러 양산을 누구 못잖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는 일찍이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거기서 유년시절과 소년시절, 청년시절을 보냈다. 통영이 어떤 곳이던가.
 시인 김춘수, 유치환, 김남주, 시조시인 고두동, 김상옥, 소설가 박경리, 송기동, 수필가이자 서예가인 고동주,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등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을 배출한 고장이다.
 
 ◁통영에서 잔뼈가 굵었으니,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예술적 향취에 젖었겠습니다.
 "그런 셈이죠. 고등학교 때는 청마 유치환의 시편들을 줄줄이 읊으며 다녔습니다. 그런데다 외삼촌이 소설가였습니다. 외삼촌은 1958년 현대문학에 단편 '회귀선'이 천료되면서 소설가가 된 송기동 선생이신데, 시인 김춘수 선생이 외삼촌의 각별한 친구였죠. 또 지난달 말에 타계한 시조시인 김상옥 선생이 형님의 은사였고,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은 큰 이모님의 친구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있어서 문학은 어릴적부터 그다지 낯설지 않은 세계였습니다. 중ㆍ고등학교 때는 학교 신문과 교지에 곧잘 글을 써 내면서 은근히 시인의 꿈을 품어보기도 했고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사촌도 이미 등단을 한 문인이네요."
 
 그러나 한창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그는 문학보다는 운동에 더 끌려 고등학교 때는 농구선수로 뛰기도 하고 그 뒤로도 줄곧 운동으로 자신의 젊음을 뜨겁게 달구었단다.
 고등학교(현 경상대 해양과학대학의 전신인 통영수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정유회사에 입사한 그는 오랫동안 한 사람의 성실한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가운데 난을 가꾸고 기르면서 팍팍한 세상살이에 여유와 멋을 부려보기도 했다.
 마침 회사 사무실이 부산일보에 들어있어 부산일보 대ㆍ소강당에서 열리는 각종문화행사와 부일갤러리의 시화전 등 각종 전시회의 단골손님이 되면서 그의 마음속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슬그머니 문학의 불이 지펴지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활동을 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문득 문득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한줄 씩 시를 적어나간 것은 꽤 됐지만, 제 시를 활자화한 것은 2002년에 '극락암 가는 길'이라는 시를 <양산시보>에 게재한 것이 처음입니다. 그 시가 양산시 공무원이면서 삽량문학회 회원으로 왕성한 시작활동을 하고 있던 한상도씨의 눈에 띄고 그를 계기로 삽량문학회의 회원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퇴직 후 다니던 정유회사의 직영주유소인 '새길주유소' 대표를 맡은 지 한참 세월이 흐른 때였다. 그로부터 시인으로서의 내공을 쌓아온 그에게 이번 등단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등단이란 과정을 거쳤다고 뭔가 별안간 달라질 일이 있을까만, 아마도 자신의 시에 대해 더 진지해지고 시작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그만큼 더 치열해지리라.
 
 여기서 시인 박건수의 시 한편을 보자. 이번 신인상 당선작 다섯 편 중에서 한편을 골랐다.
 
 <풍란>
 
 적막강산 무인도에/뿌리내리고 살아도/파도 소리 들리는/해변의 정자에/달빛 내리는 밤이면/내 영혼은 하늘을 향해/춤추는 하얀 무녀가 되고//시끌벅적한 도심에도/세상인심은 아직 살아 있어/솔가지 벗으로 곁에 두고/암석에 뿌리내린 영혼의 잔가지/무명실에 얼기설기 감겨 있어도/그대 영혼 아름다운 향기에/소리 없이 젖어들 때/우유빛 꽃술에 술렁대는/설레는 바람의 눈/아 황홀한 눈부심이여
 
 적막강산 무인도의 어느 바위에나 붙어있었을 '풍란' 한 그루를 데려와 곁에 두고 아침 저녁으로 오롯한 정을 주고 있는 시인의 '풍란' 사랑이 눈에 그려진다.
 이렇듯 시인 박건수는 꽃이나 풀 한포기, 산 능선의 억새며 산사의 돌탑 같은, 어찌 보면 소소하달 수 있는 것들에서 정갈한 시어들을 찾아낸다.
 
 그는 아내(정갑순)와 30년 결혼생활을 하는 사이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었다. 아들은 국내에서 학부(한양대)를 마치고 지금은 캐나다에 유학을 가 있고, 지난 여름에는 곁에 두고 애지중지하던 딸마저 시집보내 지금은 오누이 같은 30년지기 아내와 호젓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사위가 육사를 졸업한 육군장교(대위)여서 한결 마음이 든든하지만, 그래도 딸을 앗긴 허전함은 가누기 쉽잖다. 그래서 공연히 딸이 쓰던 빈방을 기웃거리며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
 
 저만치/우리에게 기쁨 안겨주던/고운 딸아이 물빛 웃음/나도 몰래 두 팔 벌려/꼬옥 안아 본다//순간,/아무것도 잡히지 않는/텅 빈 원의 공간 속에/흔들리며 피어오르는/천륜의 눈물꽃 아비의 긴 목에/시린 바람 되어 흐르는 밤

<빈방에서 중>
 
 시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늦깎이 시인 박건수-
 양산살이 8년에 은빛 억새 물결 출렁이는 화엄벌이며,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배내골, 천성산과 내원사 계곡, 오봉산 임경대 등 양산의 산야를 두루 누비며 양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흠뻑 젖어있는 그에게 양산은 무궁무진한 시밭이려니, 바야흐로 그의 시세계도 드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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