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시절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겐 공통의 추억이 있다.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은 그 시절 모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주저리주저리 읊어대야만 했던 국가의 지엄한 칙령이었다.
1968년 12월 5일에 공포된 국민교육헌장은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정부의 모든 공식행사에서 낭독됐다. 뿐만 아니라 초ㆍ중ㆍ고교 교과서의 표지를 넘기면 봉황 띠를 두른 국민교육헌장이 속표지에 새겨져 있었고, 심지어는 문구점에서 파는 공책 뒤표지에도 씌어있었다. 물론 각급학교 교실에서는 태극기 못잖게 반드시 비치해야 할 필수 게시물이었다.
그 당시 청소년기 또는 청년기였던 지금의 40, 50대들에겐 권위적이었고 강퍅했던 '그때 그 시절'의 기억과 함께 '헌장'이란 단어조차도 가슴을 뻐근하게 하는 '무게'로 느껴진다.
또 하나, 국기하강식-
운동장에서 마구 뜀박질을 하다가도 국기하강식을 알리는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얼른 자세를 바로잡고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심지어는 여가를 즐기기 위해 찾아간 극장에서도 국민 된 도리를 행동으로 표시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렇듯 그 시절의 학교는 국가이데올로기를 전파하고 교육하는 공간이었고 사회는 하나의 커다란 병영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봉사하는 국민정신을 드높인다.”
국가는 절대선이며 개인은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그 이듬해, 박정희는 삼선개헌을 강행했고 3년 후에는 유신체제를 탄생시켰다.
이제 그 잔혹했던 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는 걷혔지만, 그래서 진정 국민이 주인된 세상이 되었다는데…
국회 도서관 서고동 신축 공사장의 타워크레인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며 떨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은 어느 나라 백성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