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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기척(노크)과 속아주기..
사회

[시가 있는 마을]기척(노크)과 속아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2/02 00:00 수정 2004.12.02 00:00

 작은놈이 현관문에 끼어 손가락뼈가 부러졌을 때의 그 아찔하던 일이 생각난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진저리나고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아무리 돌이켜봐도 내 손가락이 부러졌을 때의 그 느낌 자체를 내가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자식도 결국은 내가 아닌 것이다.
 소설가가 등장인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다음에야 현실 속에서 남의 생각을 직접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남의 생각은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느낌 역시 마찬가지다.
 전화 받았던 정 선생이 얼굴 붉힌 채 한동안 앉았더니 하! 답답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왜요?"
 "세상에 부모나 자식이나 어쩜 이렇게 똑 같을까요. 좀 전에 전화 왔던 것 들었죠? 한 시간 전에 '○○가 교무실에 불려 와 있다고 쪽지 왔던데 아직도 교무실에 있어요?' 하고 전화하더니 글쎄 한 시간 지난 후에 다시 전화해서 학교 마치고 바로 집에 와서 제 방에서 자고 있는 걸 몰라서 학교에 전화했다고 하네요."
 "혹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하하, 참. 집에 있는 녀석이 제 방에서 같은 집에 있는 어머니한테 '나 교무실에 불려와 선생님이랑 상담하고 있어.' 할까요?
 수업 끝나면 곧바로 가서 집에 있다고 학교에 전화로 확인하고 근신해야 하는 녀석인데 녀석이 밖에 다른 볼 일이 있으니 어머니에게 그렇게 둘러댔던 거죠.
 아이들 키우다 보면 알면서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속아주며 살아야 하긴 하지만 부모까지 나서서 이렇게 속이니 내 참."
 동생네랑 함께 빵집을 하는 집사람이 지난 토요일에 가게에서 집으로 전화하던 것이 생각난다.
 "원이니. 삼촌이 30분 일찍 나와서 엄마, 아버지랑 10분 안으로 집에 갈 거야. 집 정리 좀 해 줄래?"
 "하하, 집 정리하라는 말보다 상원이랑 다원이한테 이제 게임이나 채팅 그만 하고 공부하는 척 준비하라고 알리는 것 같네요. 평상시보다 30분 일찍 집에 들어가니."
 "토요일 밤 10시 다 되어 집에 들어가는데 그때까지 게임하는 것 보면 내가 못 견디니까 그렇죠. 삼촌도 다영이 자라면 그렇게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아요. 공부하는 척하고 있는 것 보고 묻지 않으면 저희들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거짓말은 하기 시작하면 버릇이 되고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법인데."
 "말로 거짓말 하지 않아도 하는 척 하는 것 역시 거짓말 하는 것 아닌가요?"
 "거짓말하는 것과는 다르죠.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언제부터 공부했는지 물어보지 않았으니."
 강이란 강은 모든 썩은 것 다 바다로 흘려내려도 /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소금 때문만은 아니다 / 쉼 없이 흔들리는 물은 썩지 않나니 / 바다는 제 속 구석구석 거둬 놓은 / 무수한 생명들의 흔들림으로 / 잠시도 쉼 없이 흔들려 썩지 않는다 // 강이란 강은 모든 죽은 것 다 바다로 흘려내려도 / 바닷물이 죽지 않는 것은 소금 때문만은 아니다 / 쉼 없이 흔들리는 물은 죽지 않나니 / 모든 것 다 받아서 더 넉넉한 품 / 모든 것 다 받아서 모든 것 다 키우나니 / 그 키워내는 흔들림으로 죽지 않는다
 졸시(拙詩) <바닷가에서> 전문
 
 바다처럼 모든 것 다 받아들이고도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성인은 되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알고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고 몰라주어야 녀석들도 숨 쉴 수 있는 것 아닐까. 학교의 좀 많이 별난 녀석들이라면 더 많이 몰라주어야 그 별난 녀석들도 숨쉬기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아이들이 공부하는 척 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가 아이 때문에 선생님에게 거짓말 하지 않아도 될 세상이 언제쯤이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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