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2월 12일 오후 7시쯤, 육군참모총장 공관이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서 난데없는 총소리가 났다. 때는 10·26으로 대통령 박정희가 숨을 거둔 후 사회 안정을 빌미로 계엄령이 선포되어 있던 때.
때 아닌 총성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가 부하들에 의해 체포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하는 신호탄이었다.
전두환ㆍ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가 중심이 된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계엄 하에서 군사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12·12 군사반란의 주체이자 신군부 세력의 중심인 하나회는 육사 11기의 생도시절인 1954년 영남 출신들이 친목을 목적으로 결성한 단순 사조직이었다.
10·26으로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다음,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 사건수사와 군인사 문제를 놓고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서, 전두환 등의 신군부세력이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면서 또 하나의 군사쿠데타를 벌였던 것이다.
유신정권 붕괴 후 ‘이제야 비로소 민주주의 국가건설이 이루어지려니’하고 기대를 걸고 있었던 국민들은 자신들의 뜻과는 달리 이렇듯 허망하게 또 다른 군사독재정권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러한 부당한 헌정파괴행위에 항거한 1980년 5월의 광주는 온통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로부터 흐른 세월이 사반세기가 되어가지만, 신군부의 포악한 무력이 미쳐 날뛰고 무수한 애꿎은 목숨들이 꽃잎처럼 흩날리던 그 때를 어찌 잊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