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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 사랑의 무게..
사회

[시가 있는 마을] 사랑의 무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4/12/09 00:00 수정 2004.12.09 00:00

 수능 끝난 고3 교실에서 '태어남, 사랑, 일, 죽음'을 주제로 4시간짜리 특강을 하는 첫 시간에 아이들에게 '나를 이 세상에서 살아가게 하는 가장 바탕이 되는 힘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밥힘', '돈힘'이라 한다. 사람이 굶고 살 수는 없는 일이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 하룬들 살기 어려울 터이니 정답이라 했다.
 하지만 이것 말고 다른 답은 또 더 없을까 했더니 '정답이 나왔는데 뭐 더 다른 답이 있겠어요.' 해서 칠판에 적힌 주제를 참조해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눈에 주근깨가 여전히 귀여운 녀석이 '하하, 선생님. 원하는 답이 사랑이죠?' 한다.
 
 어제를 동여맨 편지를 받았다. / 늘 그대 뒤를 따르던 / 길 문득 사라지고 / 길 아닌 것들도 사라지고 / 여기저기서 어린 날 / 우리와 놀아주던 돌들이 / 얼굴을 가리고 박혀 있다. / 사랑한다 사랑한다. 추위 환한 저녁 하늘에 / 찬찬히 깨어진 금들이 보인다. / 성긴 눈 날린다. / 땅 어디에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없이 떠다니는 / 몇 송이 눈.
 황동규의 <조그만 사랑 노래> 전문
 
 추위 환한 저녁하늘에 우리와 놀아주던 일들이 얼굴을 가리고 하늘에 돌처럼 박혀 밝은 별이 되고 내 사랑의 파편들이 찬찬히 깨어진 금처럼 잔별로 돋아난다. 길 잃은 사랑의 아픔은 구름도 없이 날리는 성긴 눈처럼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하고 눈 뜨고 떨며 한 없이 떠다니고 있다. 사랑 때문에 이렇게 아팠다.
 
 이번에는 내 자신에게 물어본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장 바탕이 되는 힘은 무엇일까.
 생명에게 있어 태어남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 있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태어남과 죽음의 고통을 수반하는 진화의 길을 선택했을까. 태어남과 죽음을 대가로 지불하고 얻으려 했던 것이 무엇일까.
 연어는 자신의 육신을 죽여 새끼의 먹이로 만들고 우렁이는 자신의 살아 있는 육신을 새끼에게 먹인다. 나 이외의 다른 대상을 위해 스스로를 던지기도 하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고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고통을 떠안으면서 얻은 것이 나 이외의 생명에 대한 관심이요, 사랑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5억 년 전 선택한 '사랑의 무게'는 영원한 생명의 무게에 태어남과 죽음의 고통스런 무게까지 더한 것보다 더 무겁다는 것이다.
 
 그대 처음 만난 것이 언제였던가 // 어둠 저쪽 선캄브리아기 그 시원(始原)의 시기 / 무명(無明) 속 그대와 나에게 / 두 갈래 길이 열려 있었네 // 그대 없이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가는 길과 / 영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끝없는 나락 / 죽음으로 열린 길 // 한 번 옮겨 딛고 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길 / 영원히 갈라서는 갈림길에서 / 그대 웃음으로 말없이 기다려 주었네 // 최후의 순간 바로 그 다음 / 영원한 생명보다 아름다운 떨림으로 / 사랑은 내 속에 피었네 // 사랑의 한 순간은 영원보다 무거웁나니
 졸시(拙詩) <사랑의 무게> 전문
 
 타는 듯한 갈증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했던 것이 언제까지였을까. 그리움의 불길 때문에 머리 속이 아지랑이 가득한 들판처럼 아른거리던 것이 언제까지였을까. 사랑의 아픔으로 온밤을 밝혔던 날들이 언제까지였을까. 마흔 끝자락에 오니 문득 머리 속이 맑아지며 그 뜨거운 불길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갈구하는 사랑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내 몸까지 나누어주어야 하는 사랑만 내 삶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진실한 관심과 사랑만이 나를 영원으로 건네주는 유일한 길로 내 앞에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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