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동안의 고생이 단 하루의 점수만으로 평가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후,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그렇듯이 갑자기 다가온 여유로움이 낯선 어느 토요일, '수험생을 위한 방문연주회'가 우리 학교에서 열렸다.
'기타와 리코더의 듀오 연주'였는데, 기타연주회는 더러 보았지만, 리코더로 연주회를 여는 것은 처음 봤는데도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는 연주회였다.
첫 번째 곡은 '소나타 C 메이저'였다. 은은한 기타의 선율이 연주되자 곧 리코더 연주가 이어졌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마치 풀밭을 흐르는 듯한 낙엽의 느낌이었다가 곧 빨라지는 선율. 이 곡은 새싹이 트는 그 밝고 명랑한 느낌을 내는가 하면 나비가 한창 꽃을 찾아 헤매는 평화로움이 깃들어있었다.
두 번째 곡은 타카시 요시마츠라는 일본의 대표적 작곡가의 Litmus Distance. 기타로만 연주했는데, 아랍 풍의 음악이어서 TV에서만 보던 아랍의 모습이 떠올랐다. 통을 치기도 하고 줄을 튕기기도 하는 주법은 구불구불 모래바람이 만드는 사막의 정경을 한편의 그림처럼 펼쳐냈다.
기타 독주에 이은 리코더의 연주. 첫 연주에서의 맑고 고운 선율에 감동 한 터라 이번 독주도 기대가 컸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귀와 마을을 열어 그 아름다운 선율을 느껴 보려는 찰나에 뜻하지 않게 바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바람소리에 섞이는 고음, 이 서로 엇갈리는 소리는 우리들로 하여금 구름을 타고 어린 시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꿈을 꾸게 해주었고, 또 익숙하지 않은 선율은 이국적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나중에 선생님께 들은 바로는 이 곡은 브라질의 바하라 일컬어지는 '빌라 로보스'가 20세기 기타의 최고봉인 세고비아와 그의 아내를 위해 작곡한 것으로 슬픔 속에서 기쁨을 노래한 음악이라고 하였다.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 채 듣게 된 다음 곡은 '탱고의 역사'라는 음악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여 탱고밴드를 이끌었던 '피아졸라'라는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이 음악은 빠른 템포의 아주 흥겨운 아르헨티나의 음악이었다. 어깨가 들썩거려지고 음악에 따라 발로 박자를 맞추면서 내가 마치 저 음악에 따라 탱고를 추는 듯 하였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제스티'라는 음악으로 아주 역동적인 몸짓을 표현하듯 매우 빠르게 연주되었다. 음악을 감상하느라 몸과 눈은 비록 정지된 상태였지만 이 음악을 들으며 마음만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 되고, 깊은 산 맑은 계곡 물이 되고, 하늘을 떠다니는 새하얀 깃털이 된 듯 하였다.
이런 가슴 가득 차 오르는 감동으로 연주회는 끝이 났고 바하의 G선상의 아리아를 앙코르곡으로 더 들은 뒤 오늘의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타와 리코더라는 악기지만 귀에 익숙지 않은 곡으로 좀 더 색다르고 이국적인 향취를 느낄 수 있었고, 그 동안 공부하느라 걱정하느라 쌓였던 모든 피로가 날아가 버린 듯 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 음악의 파동이 우리 모두를 아직 멀기 만한 꿈을 항해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게 해 준 것 같았다. 연주회가 끝난 뒤 내리비친 햇살은 유난히도 밝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