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기말고사를 마치고 꽤 괜찮은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거금을 들여 피자를 시켰었다.
연극반 아이들과 함께 피자를 먹으며 2주일밖에 남지 않은 공연을 어떻게 준비할지를 의논하는 자리였다.
공연 준비를 위해 힘차게 나아가려고 했던 그 계획이 6명만 남은 숫자에 그냥 화로 폭발하고 말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 앞에 놓여진 피자를 내 눈치를 살펴가며 먹은 후 집으로 갔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점심을 먹은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모이는 것이 아닌가.
비록 1/3이 빠져나간 숫자였지만 그래도 시험을 다 친 후의 해방감을 애써 누르고 모여든 그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단지 약속을 지키지 못한 몇몇 아이들로 인해 화가 난 것이었다.
나의 다혈질적인 성격이 행복한 오후를 망쳐버린 것이었다.
교직경력 20년, 40을 넘긴 나이에도 조절되지 않는 나의 이 급한 성격이 제발 내년에는 세월에 녹아들고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에 녹아들어 폭발하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토요일의 머쓱함을 무릅쓰고 다시 만난 연극반 아이들, 약간은 심리적으로 위축된 듯이 보였지만 그래도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방글방글 웃는 그 눈에서 희망을 보았다.
12월 27일 공연을 딱 2주일 앞두고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은 없다.
그냥 무모한 교사와 무모한 아이들의 의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은근히 게으름이 앞서 자신없으면 하지 말자고 꼬셨다.
사실은 매일 밤 9시, 10시까지 남아서 함께 준비할 자신감이 없어서 살살 꼬셨더니 아이들은 막무가내다. 하고 싶단다. 그때 가서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없이 공연을 하고 싶단다.
'가시나들! 그라모 우리 집 아가야들은 어짜라고… 우리 집은 거의 동물원 수준이 될텐데.'
정말 주저앉히고 싶었다.
딱히 내가 연극에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아이들이 학창시절에 이런 활동을 하면 행복할 것 같아서 시작한 이 일이 이젠 나를 얽매이게 하는데도, 우리들의 회의는 <행복한 나무 designtimesp=9055>라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으로 결정된다.
'야박한 가시나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려는 아이들의 눈빛이 너무도 사랑스럽고 예쁘다. 9시 10분까지 연습을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아이들이 내 옆으로 모여들더니 이상한 사랑의 세레머니를 던진다.
"야들이 와이래 샀노? 징그럽게."
"헤헤! 쌤이 좋아서요. 쌤, 내일도 우리 열심히 하면 사탕하고 먹을 것 많이 주이소."
이 순간 나는 무척 행복했다. 이 맛은 아이들과 함께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맛이다. '그래, 사탕만 주겠나. 사랑도 듬뿍 듬뿍 줄께. 무럭무럭 건강하고 곱게만 자라다오. 이쁜 우리 꿈아씨들아!'
아이들과 어두운 복도를 쿵쿵대며 함께 걸어 내려오는 그 길이 마치 행복으로 가는 꿈길인 듯했다.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연극반 아이들에 대한 모든 악몽을 다 떨쳐버렸다.
아이들 곁에 있는 한, 난 행복하다. 언제까지 이 짝사랑이 계속될까. 꿈이라면 차라리 깨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