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에 발령받아 8년째 근무하면서 양산에서 좋은 학교란 어떤 학교인가를 입시철이면 생각해본다. 고교입시가 다가오면 각 고등학교는 홍보전이 치열하다. 조금이라도 더 공부 잘하는 학생을 받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을 눈여겨 들여다보면 교육과 관련한 이해 당사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학교란 어떤 학교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른바 명문대학을 몇 명이나 보냈는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각 고등학교는 그 해 대학입시에서 명문대학 합격자를 널리 홍보한다. 길거리에는 한동안 ○○고등학교 ○○대학 입학을 알리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이 현수막을 보면서 어른들은 저 학교가 좋은 학교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좋은 학교는 명문대학 합격생이 많은 학교라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명문대학을 많이 보내지 못한 학교는 언제나 삼류학교라는 멍에를 안고 살아야 한다. 이런 평판은 거의 낙인이 되어 여간해서는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낙인이 그 학교에만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지역에 뿌리를 두고 전통을 다져온 지역의 학교는 여전히 삼류학교가 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명문대학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다른 지역의 학교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은 결국 패배감으로 이어진다. 학교 현장에서 그것은 여실히 나타난다. 스스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고 살아간다는 것은 꿈을 꾸지 않는 것과 같다. 자신의 미래 삶에 대해 전망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도 값진 것이다. 이러한 성실한 노력은 지금 당장에는 실현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무거운 패배감과 무기력의 멍에를 지게 했는지를 느끼게 된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학교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부정적 생각은 자기 비하를 넘어 자기 학대에 이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때는 이 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학교평가의 기준을 명문대 합격자 수로만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하고 지역 사회의 큰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교육환경에서 자꾸만 낡아 가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늪 속을 헤엄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보다 바람직한 교육을 지향한다면 교육에 대한 사고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낡은 제도와 관습을 버리고 우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한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실천적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학교란 범박하게 말하면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만족하는 학교일 것이다. 그러나 너무 이상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좋은 학교는 학생, 학부모, 교사 모두가 함께 노력하여 만드는 학교가 될 것이다. 학생은 스스로 노력하는 태도를 갖추고 교사는 학생들을 안내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학부모와 지역 사회는 그 바탕을 마련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이를 통해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확대되어 지역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