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왜 무덤을 젖무덤같이 만들었을까.
졸업하고 취직하면서 친구들 결혼식, 집들이 다니다가 좀 사이를 두고 아이들 키우다 보면 달거리로 조문(弔問) 다니거나 2세 혼사(婚事) 다니게 된다.
세밑에는 서울 사는 불알동무 차 군이 모친상을 당해서 올라가는데 장모님 몸에 마비증세가 다시 와서 병원에 입원했다며 집사람이 날새지 말고 내려오란다. '어느 병원이냐'며 먼저 병원에 들렀다가 보고 올라가던지 말던지 하겠다고 했더니 얼마쯤 입원했다가 퇴원할 정도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라 했다.
영안실에는 불알동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망자에 대한 이야기 하나 없이 퇴직, 구직, 승진, 사업, 건강 이야기만 하는데 '이렇게 조문 다니다가 자녀 혼사 다니고 곧 환갑, 칠순, 그러다 보면 어느 결에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무덤에 들겠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산다는 게 한 발짝 옆이 바로 죽음이지 뭐.' 문상객이 뜸한 사이 잠시 동무들 옆에 앉았던 상주(喪主)가 한 마디 거든다.
"선산(先山) 할아버지, 할머니 아랫자리는 어머니, 아버지 모시기에 이제 안 맞을 것 같고 가족 납골당을 알아봐야 할 것 같아." 장모님 누워 있는 대구 영대병원 병실에서 나와 자판기 커피 한 잔 씩 들다가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내려온 큰처남이 한 마디 한다. "절에서 하는 납골당이 괜찮은 것 같던데.", "공원묘지에도 요즘은 가족 납골당 같이 하던데 거기도 교통편도 좋고 괜찮아요." 손위동서가 조심스레 한 마디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이니 언제 어찌 될지 모르니 준비하는 것 좋죠."
버즘나무 이파리 서쪽으로 눕던 길. 그 길 끝에 놓여 있던 비둘기의 주검. 선명한 자동차 바퀴자국. / 새의 내장도 무겁구나, 파리해진 잎사귀의 반쪽을 가리며 오래도록 주검을 맴돌던 슬픈 애인이 펄럭였다. / 술잔 속에서 끊임없이 피 묻은 깃털이 올라오던, 그날 애인을 안고 속삭였던가 / 갓 태어난 아기들의 뱃속을 생각해봐 작은 정원 같은, 붉은 다알리아 콩닥콩닥 김을 뿜고 삐비풀이 연초록 길을 만들지 노랑 주홍빛 채송화, 토란잎 위에서 장난치는 피톨들, 붉고 흰 물방울. 물방울은 동그란 무덤이야 우린 누구나 무덤의 집이라구 따스한, / 내 가슴에 떡잎처럼 매달려 우는 어린 애인, 덜 여문 내 꽃자리로 사르륵 통증이 지나갔고 나는 무덤을 열어 젖꼭지를 물려주었지만 // 어떻게 울음을 그쳤는지 모른다 그날, 내 애인은 // 동구 밖에 비둘기를 묻어주고 내 등에 업혀 돌아오던 다섯살배기 동생이 되어 내게 말했다 고마워 언젠가 나도 엄마가 되어줄게. 향긋한 냄새가 그애의 정원에서 풍겨와 핑그르르. 내 무덤에서 정말로 젖이 돈 것만 같았다
김선우의 <무덤이 아기들을 기른다 designtimesp=7385> 전편
어느 시인은 '삶은 마약과 같아 끊을 수 없구나' 라며 해탈하지 못하는 삶을 탄식했지만 한 죽음이 다시 태어남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생명 가진 것이면 다 가지고 있는 욕망 아닐까.
죽지 않으면 태어남도 없을 것이다. 나는 나중에 화장(火葬)해 달라고 말하고 있지만 납골이라도 하려거든 젖무덤 같은 봉분 닮은 함 속에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