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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문화초대석]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 '한상식'..
사회

[문화초대석]신춘문예로 등단한 동화작가 '한상식'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1/06 00:00 수정 2005.01.06 00:00
"두고두고 읽히는 글을 남기고 싶어요"

 양산의 한 문학도가 신문의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됨으로써 비로소 어엿한 동화작가가 되었다.
 올해 만 서른 살이 되는 한상식이라는 사람.
 신기동 주공아파트에 들어앉아 애오라지 책보고 글 쓰는 일에만 매달려왔던 이 사람이 마침내 작가라는 레테르를 달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또복권 당첨보다도 더 힘들다는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을 거머쥐었기에 망정이지 그 이전에는 한상식이라는 한 인물을 눈여겨보는 이들이 그다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희귀 난치성질환인 근육병을 앓고 있는 그는 바깥나들이가 자유롭지 않아 세상 사람들과 두루 섞여 지내지도 못했을 뿐더러, 자신이 작가의 꿈을 품고 글쓰기에 정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았던 터이다.
 
 한상식, 그는 1975년에 양산에서 태어난 양산토박이다. 누구라 아무 굴곡 없는 순탄한 삶이 있을까만 한상식의 30년 세상살이야말로 한편의 애잔한 드라마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중학교 3학년 때는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셨으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세상살이 고달픔이 어떠했을 지는 능히 짐작이 가는 바다.
 그래도 위로 형과 누나가 있어 버겁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마냥 외롭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운명은 이 의지가지없는 세 남매에게 너무나도 가혹했다. 형과 누나가 차례로 근육병에 걸리더니 상식씨 자신마저도 덜컥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고등학교(양산고)를 졸업하고 20대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근육이 힘을 잃어갔던 것이다. 그래도 스무 네 살이 되기까지는 혼자 힘으로 걸을 수는 있었으나, 종당에는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1급 장애인이 돼 버렸다.
 
 스무 살 한창 때까지 멀쩡하던 자신에게 느닷없이 들이닥친 이 뜬금없는 운명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누구든지 다 제 스스로 짊어지고 가야할 삶의 무게가 있게 마련이지요.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 해도 다들 고만고만한 어려움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이 이는 어느새 삶을 달관하고 있구나.' 그리 보아서 그런지 그의 눈빛이 참으로 형형하다. 아마도 이 사람의 영혼의 빛깔도 해맑기 그지없으리라 싶다.
 
 병을 얻고 집에 들어앉아 바깥세상과 담을 쌓아야 했던 그는 그제야 책이라는 좋은 벗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렵 어느 날 그는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만나 비로소 문학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다.
 '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라는 깨우침을 얻은 뒤로 김용택을 만나고 안도현과 나희덕, 기형도, 김혜순과 천상병을 두루 만났다.
 물론 얼굴을 직접 대면하여 만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작품을 통한 교류였던 것이다.
 때로는 시대를 훌쩍 뛰어넘어 백석에게 말을 걸고 오장환에게 다녀오기도 했다. 그렇게 또 신경림을 만나고, 조태일과 이상국, 고재종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그는 김용택에 푹 빠졌다.
 
 [꽃이 핍니다/꽃이 집니다/꽃 피고 지는 곳/강물입니다/강 같은 내 세월이었지요]
 
 단 다섯줄의 '강 같은 세월'에 감전돼 김용택의 시집은 모조리 사 모으고, 섬진강 연작 등 그 속의 시편들을 주저리주저리 읊조렸다. 나중에는 그의 산문집도 두루 섭렵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시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형도도 흉내 내 보고 김혜순의 시를 거들떠보기도 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누군가를 닮으려는 생각을 그만 접었습니다. 한상식은 어디까지나 한상식일 뿐, 다른 그 어느 누구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그로부터 오직 한상식만이 낼 수 있는 한상식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했습니다."
 
 그런 한편, 그는 소설 쪽에도 눈길을 보냈다. 거기에는 황석영이라는 한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곧 황석영의 '한씨 연대기', '어둠의 자식들', '장길산'에 매료되고, 이문구의 '관촌수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이문열의 '금시조'와 김훈의 '화장'과 '현의 노래',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도 탐독했다. 이어 한국현대소설전집을 읽고 또 읽고 이상문학수상집도 구해 날밤을 세워가며 읽었다.
 
 그런 다음 그는 곧장 자신의 문학적 탐구를 동화 쪽으로 옮겨갔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가 큰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정채봉씨와 황선미씨의 작품들에서도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요."
 
 '강아지 똥'을 비롯한 권 선생의 동화는 오늘날 동화작가가 된 그에게 더없이 좋은 교본이었다. 정채봉의 작품은 '오세암', '초승달과 밤배' 등의 동화는 물론, '그대 뒷모습'과 같은 수필집도 죄다 읽었고, 황선미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도 적잖은 자극을 받았다. 처음에는 시작(詩作)에만 몰두하던 그가 동화를 써 보기로 작정했던 것이 바로 이 무렵이다.
 이쯤에서 한상식의 문학적 호기심이 처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남다른 글재주를 뽐냈으리라…
 
 "아닙니다. 어렸을 때는 볼만한 책도 없었으려니와 누가 교과서나 참고서가 아닌 다른 책을 보라고 권하는 이도 없었습니다. 억지로 쓰는 작문이나 독후감 말고는 글을 써볼 일도 없었지요. 중학교 때는 마침 프로야구가 막 출범해 선동열 선수와 최동원 선수가 한창 각광을 받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한때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지니기도 했어요. 선수가 못되면 최소한 스포츠기자가 되어서라도 경기장을 마구 누비고 다녔으면 했습니다. 아마도 병을 얻지 않았더라면 스포츠기자나 공무원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그가 뜻하지 않은 병을 얻은 것이 그로 하여금 문학에의 길에 들어서게 한 단초가 된 셈이다. 그렇다고 그것을 어찌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만,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 앞에 끝내 무릎 꿇지 않고, 자신이 일찍이 경험한바 없는 문학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은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다 싶었던 2001년부터 그는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가르침도 없이 홀로 문학의 길을 탐색해 온 이 신출내기에게 신춘문예의 벽은 두텁기만 했다. 두어 차례 쓴잔을 마시고 난 다음 지난해 또 다시 국제신문의 '2005 신춘문예'에 도전장을 던졌다.
 내심 시부문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하고, 동화작품 두 편도 곁들여 냈다. 시야 그동안 꽤 필력을 쌓아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에서도 빛을 본바 있지만, 동화는 두 편을 쓴 것이 고작이라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는 본선까지 올랐다가 아쉽게 탈락을 하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던 동화가 오히려 영광을 안겨준 것이다.
 이번에도 시부문 당선이 비켜간 것이 못내 서운한 일이지만 '좀 더 공력을 쌓으라'는 당부로 받아들이고 더욱 정진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언젠가는 소설도 써볼 생각입니다만, 당분간은 시와 동화에만 매진하겠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지닌 작가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냄새 나는 글,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 서정적인 문체의 시, 어른도 공감할 수 있는 동화를 쓰되 나만의 색깔을 지닌 글을 쓰고 싶어요."
 
 그의 이번 당선작은 '지지'라는 이름의 하루살이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엄마의 환영을 좇아 바다로 날아가면서 엮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정처럼 맑게 빚어낸 '엄마의 얼굴'이란 제목의 동화다.
 심사를 맡은 임신행(동화작가)ㆍ강기홍(아동문학가)씨는 그의 작품을 두고 '작은 생명체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애틋하고 동화가 철학 이전에 보여줘야 하는 부드러운 꿈이 거침없이 잘 나타났다'고 칭찬했다.
 특히 민들레할머니가 건네준 홀씨 하나를 바닷가 언덕에 심기 위해 바딧불이와 더불어 먼 길을 날아와 언덕너머로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하루살이로서의 한살이를 끝내면서 손에 쥐고 있던 홀씨를 반딧불이에게 쥐어주는 대목에 이르면 목젖이 얼얼해 진다. 이는 아마도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어머니를 잃은 자신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지지를 통해 바닷가 산에다 꽃씨를 심게 하는 미적 행위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해무리 속에 어머니를 떠올리는 대목은 작가적 역량을 엿볼 수 있었다'는 심사평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꾸준히 시를 쓰면서 닦아온 필력은 그의 동화에서도 정갈한 시적 운율로 묘사된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와 동화를 써야 되겠지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글을 파는 작가가 되지는 않으렵니다. 그것은 곧 영혼을 파는 일이니까요. 두고두고 읽히는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허섭스레기 같은 글로 돈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좋은 글을 써서 돈이 좀 모이면 근육병을 앓고 있는 환우들을 위한 기금도 마련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창작기금도 남기고 싶다는 결 고운 생각을 지닌 동화작가, 한상식.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읽고 문학에 눈을 뜬 그에게 2005년은 바야흐로 '화려한 서른 잔치'가 펼쳐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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