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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시가 있는 마을]내가 바라는 소식..
사회

[시가 있는 마을]내가 바라는 소식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1/14 00:00 수정 2005.01.14 00:00

 새해다. 사람들은 해가 바뀌는 것 자체에 설렘이 있다. 그것은 일종의 기대, 더 나은 날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작년의 괴로움, 상처, 굴욕, 어리석음, 분노 등을 다 잊어버리고 새해에는 좀 더 나아지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진다. 그러나 또다시 연말이 되면 그런 기대를 가졌던 기억마저 희미해지지만, 사람들은 새해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이라는 단어가 주는 힘이요,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니까.
 올해는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엄청난 재앙의 소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까지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재난이었다면 좋으련만, 재앙의 소식은 아직까지도 유족들의 애끓는 울음소리와 함께 계속되고 있고, 날씨마저 꽁꽁 얼어붙어 사람들을 오그라들게 만들고 있다.
 물론 다른 쪽에서는 배고픈 사람을 위해 자신의 양식을 나누어주고,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리며, 죽은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올해는 실직, 빈곤, 노숙, 살인, 자살, 방화, 비리, 테러, 유아 매매와 같은 우울한 단어와 관련된 소식에서 좀 벗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세상 살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 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 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꽃을 제 마음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이 혼자 눈시울 붉히면/ 발자국 소리를 죽이고 그 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 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 새가 와서 시의 이름을 단 꽃을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 새가 가는 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 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마다 살구꽃 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상 가에 모여 앉아 꽃물 든 수저를 들 때/ 어둠이 목화송이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 날 밤 갓 시집 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일 가질 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베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이기철, <내가 바라는 세상 designtimesp=877> 전편
 
 올 한해는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에 꽃모종을 심자. 다른 사람이 심은 그 꽃을 나 혼자 보기 위해 깊은 밤에 슬쩍 자신의 집으로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그 꽃에 함께 부를 수 있는 이름을 달아 주자.
 신혼여행을 간 아름다운 부부가 여행지에서 처참하게 세상을 버리는 그런 소식이 아니라, 꽃처럼 아름다운 아이를 가지고, 그 아이들이 등불같이 환하게 자란다는 소식, 아무도 돌보지 않아 시들어 가는 꽃에게 누군가 가만히 다가가 이름을 불러주었다는 그런 소문이 들리기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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