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초 가족 계추로 5남 2녀 부부가 큰형님 집 넓은 거실에 모여 편을 갈라 윷놀이를 했다. 영화배우 성룡을 빼다 박은 작은 형님이 모가 나오자 신명으로 윷놀이 판을 한 바퀴 구르고 다시 한 번 더 논 것으로 석동짜리를 잡자 일어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참 신명 좋다.
"형님은 아직 청춘이네요."김천 큰 자형이 환갑이 이제 두 해 남은 작은 형님한데 한 마디 한다.
"하하하, 마음이야 아직 새파란 청춘이지."
저녁 먹고 한담을 하다가 흥 많은 작은 형님이 노래방에 가자고 했다. 모두들 날씨가 너무 추워 그냥 집에 있자고 했더니 거실에 있는 노래방기계라도 틀어 보란다.
"청춘아~ 내 청춘아~ 어딜~ 갔느냐~"
작은 형님이 일어서서 혼신의 힘을 다하듯 노래하다가 문득 뚝 그치고 좌중을 둘러보며 한 마디 한다. "참 잠깐이야. 우리 계군 중에 일흔이 다 된 사람이 있는데 '내가 한 3년만 젊었어도 참 이렇지 않을 텐데'하는 말을 하곤 해. 거기 대면 나는 아직 엄청난 청춘이지 뭐. 그러니 뭘 하든 아직 늦지 않았어. 3년 뒤에 또 3년만 젊었다면 할 것이고 10년 지나고 나서는 또 10년만 젊었다면 할 텐데."
작은 형님 내외가 지루박을 몇 번 밟고 난 다음 큰형님이 판을 가라앉혔다. 술 한 잔 나누면서 지난 해 어머니 장례 후 나왔던 가족 납골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이야기 끝에 화장과 윤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환생한다는 말 말짱 거짓말이야. 무슨 증거가 있니?"
"전생에 닿는 꿈이나 다른 것 많이 있지만 다 두고 젖먹이 애들 눈을 한 번 봐. 맑고 깨끗한 가운데 사람의 속을 들여다보는 늙은 사람의 눈빛이 있어. 아직 말 못하는 아이들 눈을 들여다보면 마치 세상 풍파 다 겪은 지혜로운 눈빛을 볼 수 있어. 모든 애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환생하면 뭐 하냐? 환생한다 한들 전생의 나를 지금의 내가 모르는데 지금의 내가 내생에 환생한들 지금의 내게 무슨 상관이 있냐?"
"자, 자, 이제 윤회니 환생이니 하는 말 좀 두고 하던 이야기나 하자. 우리 형제들 어쨌든 이렇게 좋게 만난 것 다 복이요 좋은 인연이지 뭐. 형제간에 사이 나쁘면 어떻게 가족 납골묘에 같이 묻히겠니?"
뭐라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 니 뭐라카노, 바람에 불려서 //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가는 뱃머리에서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 뭐라카노 뭐라카노 /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 하직을 말자, 하직 말자.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라카노 뭐라카노 뭐라카노 /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 오냐, 오냐, 오냐,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 뭐라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 오냐, 오냐, 오냐, /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박목월의 <이별가 designtimesp=18174> 전문
삶과 죽음의 간격이 강으로 놓여 있다. 강 저편이 저승이라면 강 이편은 이승이다. 강 저편에 있는 누군가가 강 이편에 있는 화자에게 무엇이라고 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바람에 불려서 잘 알아들을 수 없다. 동아 밧줄로 이야기되는 질긴 인연의 끈도 '뭐라카노, 뭐라카노, 뭐라카노'하는 안타까움 속에 삭아 내리고 있다.
"온 순서대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 언젠가는 가겠지. 그리고 또 이렇게 만났듯 또 만나면 좋지 않겠니?"큰형님 말에 잠시 숙연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