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행이 경부고속철도 13-4공구인 동면 개곡리 공사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가 조금 넘은 때였다. 허옇게 천성산 자락의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는 현장은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공사장의 흙과 자갈을 실어 나르는지 트럭들이 공사장 밖으로 빠져나가고 포크레인 3대와 굴착기 1대가 이곳저곳에 흉물스레 늘려있다. 굴착기는 굉음을 울리며 연신 바위를 뚫고 있고…
대오를 지어 공사현장으로 들어서는 일행을 본 현장 관계자와 인부들이 화들짝 놀라 일손을 멈추고 일행들 곁으로 몰려든다. 그래도 초록행동단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공사장 안쪽 포크레인에다 '자연아 미안해'라고 적힌 초록색 펼침막을 가져다 건다. 그런 다음 '천성산관통 고속철도 중단하라'라는 대형 펼침막이 기다랗게 펼쳐지고, 일곱 명의 단원들이 '천ㆍ성ㆍ산ㆍ아ㆍ미ㆍ안ㆍ해'라는 일곱 조각의 피켓을 각각 치켜들고 펼침막 뒤로 가서 선다.
"왜 이러시오. 물러가시오." 공사장 관계자가 일행들의 앞을 가로 막으며 윽박지른다.
"이러면 안 됩니다. 공사를 방해하지 마시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경찰관도 거든다.
그러나 마이크에서는 진행자의 거침없는 사차후가 터져 나온다.
"당신들의 법으로 따지면 우리들은 지금 불법을 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연행하시오. 당신들의 법대로 처리하세요. 우리는 인간의 이기심과 편견, 그리고 오만에 의해 잘려나간 천성산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김제남 단장이 마이크를 받아 든다.
"포크레인의 굉음을 생각하며, 우리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 천성산의 뭇 생명붙이들과 지율 스님을 위해 잠시 묵상합시다."
순간 공사장이 적요해 진다. 잠시 뒤 고개를 든 일행들은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 힘차게 구호를 외친다.
"천성산관통 고속철도 즉각 중단하라" "환경영향평가 즉각 실시하라"
여러 차례 구호가 반복되고 다시 마이크를 잡은 김 단장.
"88일째 단식을 하고 있는 지율 스님은 이렇게 외칠 힘마저 없습니다. 천성산과 지율 스님께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입니다.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얼마나 외로우셨습니까?"
이어지는 외침.
"우리는 결코 절망하지 않으리라. 언젠가는 천성산을 무너뜨리고 있는 저 포크레인이 멈추리라. 천성산이 생명으로 살아나리라. 생명의 공명이 포크레인을 멈추고 마침내 천성산이 천성산으로 살아나리라."
그리고 침묵, 긴 침묵… 모두들 땅바닥에 엎드려 절한다.
'천성산이 이처럼 파헤쳐지고 있는데, 도롱뇽이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의 지율 스님이 자신을 버려 천성산을 살리고자 하는데,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외치고, 침묵하고, 절하고… 그러다 그들은 그곳을 떠났다. 건너편 산에서 '까악' '까악' 울어대는 까마귀 울음이 진혼곡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