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고속철 터널공사에 항의하며 청와대 부근에서 일체의 곡기를 끊은 채 기나 긴 단식을 이어온 지율 스님이 21일 돌연 자취를 감춰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으나 그로부터 일주일이 가까워지는 데도 여전히 행방이 묘연하다.
알려진 바로는 21일 자신이 요구했던 '환경영향 공동조사' 등 단식해제 조건을 정부가 모두 거부한 사실을 확인한 뒤 문정현 신부, 김제복 수사, 동생 등과 함께 서울 마포의 한 수도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스님이 21일 저녁 수도원에서 나온 뒤로는 종적을 감춰 경찰도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율 스님은 수도원에서 나오면서 손정현 천성산대책위 사무국장이나 박영관 부산시 교육위원 등에게 전화를 걸어 "내 몸을 내려놓을 곳을 찾아야겠다", "뒷일을부탁한다"는 등의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져 일각에서는 스님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처소를 옮긴 게 아니냐며 걱정들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님을 잘 아는 다른 지인들은 "스님이 목숨을 끊기보다는 '더 큰 길'을 택하지 않겠느냐"며 애써 희망적인 풀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스님의 단식이 이미 90일을 넘어서 스님의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워진 지경이라 마냥 걱정을 놓을 수만은 없는 상황.
물과 차만 마시면서 90일 넘게 곡기를 끊는다는 것은 이녁의 목숨 하나를 내놓겠다는 각오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정이 이 지경에 이르자 도법ㆍ지홍ㆍ세영 스님과 문정현ㆍ규현 신부 등 종교계 인사 10여명이 24일부터 지율 스님의 단식에 동참하기로 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지율 스님과 생명평화를 위한 종교인 참회 단식 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 계획을 밝혔다.
미리 배포한 참회 단식기도 선언문에서 이들은 "함께 사는 생명의 길을 찾아 지율 스님이 단식하고 있다"며 "우리도 함께 사는 생명의 길을 찾아 그와 함께 단식하며 함께 아파하고 울고 기도하고 발원하려 한다"고 단식 동참의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는 이날 '지율 스님을 살려야 한다'는 성명을 내고 "지난 2년 동안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많은 사람들을 속이고 농락해왔다"며 "마침내 지율 스님이라는 지순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지율 스님의 죽음은 단지 천성산의 죽음에 그치는 게 아니라 '참여정부의 죽음'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천성산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고 노 대통령이 문서로 약조한 '천성산 터널 백지화 공약'을 지켜야 지율 스님은 살아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