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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문화초대석]양산 예술계의 마당발 - 이동국 미협 양산지부..
사회

[문화초대석]양산 예술계의 마당발 - 이동국 미협 양산지부장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1/27 00:00 수정 2005.01.27 00:00
"자연은 가장 위대한 스승"

 양산지역사회에서 '이ㆍ동ㆍ국'이라는 이름 석자를 모르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또한 이 이가 한국미술협회 양산지부 지부장이라는 것도 두루 다 아는 사실이려니….
 1948년에 하북면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나오고 읍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대처인 부산으로 잠시 나갔다가 다시 고향으로 전학을 온 이후로는 줄곧 양산에서만 살아온 이 양산토박이를 어찌 모른다 할 수 있으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줄곧 향리에서 미술창작활동을 하면서 이녁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기도 했지만, 일찍이 양산청년회의소(JC)를 통해 오랫동안 지역봉사활동을 한 터라 지역사회에서는 그의 이름이 낯설지 않다. 그런 그가 미술에 눈을 뜬 것은 언제일까?
 
 "특별히 그림지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즐겼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와 중ㆍ고등학교 때는 양산군(시로 승격되기 전) 사생대회의 상을 휩쓸다시피 했지요."
 
 아마도 타고난 '끼'가 있었던가 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작 화가보다는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축구선수가 될 작정을 하고 축구부가 있는 부산의 해동고등학교에 입학해 열심히 공을 찼다.
 그런데 운명은 그런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았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축구를 할 수 없게 되고 학교도 양산으로 옮기는 곡절을 치르면서 운동은 자연스레 뒷전으로 밀렸다. 그때부터 그는 애오라지 그림 그리기에만 정진했다.
 
 "그림을 정식으로 전공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그림이 좋아 홀로 즐겼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그림과 서예를 함께 했어요. 그러다가 83년에 '매원 염정희' 선생에게 사군자를 배우고 '동정 김인총' 선생으로부터 문인화를 사사했습니다. 서양화는 '안세홍' 선생을 사사했고요."
 
 '안세홍 선생?' 반가운 이름이다. 안 화백은 양산 출신으로 지금은 부산 등지에서 활약을 하고 있는 우리 화단의 걸출한 인물이 아닌가? 전공을 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그의 그림에 풍기는 고즈넉하고 단아한 기품이 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그의 서예 작품 또한 범상치 않다. 미협에도 그림이 아닌 서예로 가입 했다니 알만한 일.
 안 화백은 처음 스승으로 모셨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호형호제'하며 일요일에는 화구를 울러 메고 함께 그림그리기 좋은 산천을 찾아다니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
 
 "자연과 예스러운 것을 아낍니다. 제 작품에서 정겨움이 묻어났으면 해요. 해질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어느 촌락의 풍경, 소담스러우면서도 친근감과 정다움이 담긴 작품세계를 추구합니다."
 
 그렇다면 화가 이동국에게 예술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누구나 좋은 것을 보면 좋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예술적 감성이 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자연을 가장 위대한 스승이자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보아도 제 나름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잖아요. 그것이 곧 예술이지요."
 
 그러므로 문화와 예술은 인간의 삶과 떨어질 수 없다는 이동국 화가.
 본시 오지랖이 넓어 예술활동이든 세상살이든 이녁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있기보다는 이웃과 두루 섞여 교류하기를 좋아한다.
 양산JC 사무국장과 상근부회장을 거쳐 87년에는 양산JC 제9대 회장으로 지역봉사활동에 땀을 쏟았고, 미협활동도 양산미협이 한국미협에 가입하기 전부터 관여해 한국미협 양산지부를 발족시키는 산파역할을 했다. 그러고는 미협 양산지부의 2, 3대 지부장을 맡아 6년간 지부를 이끌어 오면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회원들의 수발을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협 양산지부장 말고도 경남미협 운영위원과 예총 양산지부 부지부장까지를 맡고 있는 지역 예술계의 마당발이다.
 
 1969년의 '69 3인 동인전'을 시작으로 양산미협 회원전 등 각종 전시회에 출품하고, 제1회 대한민국 문인화 전람회, 대한민국 서화대전, 국제미술대전, 대한민국 서예대전, 한ㆍ중 서화 휘호대전, 부산서예대전 등에 입선했다. 또 삽량문화제 사생대회를 비롯한 각종 대회의 심사위원과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전업작가로는 식솔들을 건사할 수 없어 중부동에 식당을 열어 놓고 있는 화가 이동국.
 어느새 50고개를 훌쩍 넘어 이순을 바라보고 있는 그의 예술세계와 인생살이가 날로 무르익기를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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