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공항에는 이국인들이 많았다. 나는 나리따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수속을 하는 중이었다. 여기 저기 이별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은 애틋하기만 하고, 나는 가라는 사람이 없어 서운한 이국의 공항에서 그들의 이별을 구경하였다.
그 가운데 어머니의 손을 잡은 사내아이의 크고 검은 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직 이별이 무언지 모를 정도의 작은 키를 보며 나는 그 아이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이거나 스페인이거나 그런 이국의 아이일 거라는 상상을 하였다.
탑승하기 전, 남편이 아내를 가볍게 포옹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한참 동안 안고 있었다. 아버지와 포옹을 끝낸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아이와 똑같은 눈을 가진 남자의 얼굴에는 아쉽고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몇 번을 뒤돌아보며 뒷걸음질치며, 그 크고 검은 눈에 눈물을 가득 담아 아버지를 쳐다보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나고야에 남아서 외롭게 일하게 될 아버지와 나리따 공항으로 가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그들 모자(母子)를 상상하였다.
'얘야, 오늘의 이별이 모두 너를 위한 것이니, 안타깝고 그리운 마음을 묻어 두어라. 그리고 더 이상 울지 말아라.' 하며 나는 그 아이를 위해 주문(呪文)을 걸었다.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 알전등이 켜질 무렵/ 문수(文數)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내 신발은/ 십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壁)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 박목월, <가정 designtimesp=9887> 전편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이 냉혹한 지상의 현실에서 십구문 반의 신발로 존재하는 아버지, 아홉 마리 강아지의 따뜻한 아랫목을 위하여 굴욕과 굶주림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이국의 땅에서 안간힘을 쏟아야 하는 어설픈 아버지는 눈이 크고 검은 그 아이의 가장 위대한 영웅.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라는 김현승의 시('아버지의 마음' 중에서)를 생각하며 나는 오래 잊었던 이름 '아버지'를 떠올려 보았다.
지상의 가장 고독한 이름이라는 아버지를 위하여,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