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산 관통터널공사에 반대하는 지율스님이 3일로 단식 100일째를 맞았다. 이를 두고 최근 정부와 정치권도 뒤늦게 사태해결에 부심하고 있지만 꼬인 매듭의 실마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단식, 단식, 단식, 단식…
2003년 2월5일부터 시작된 지율 스님의 단식은 이번이 네 번째. 38일, 40일, 58일, 100일(진행 중). 횟수를 거듭 할수록 길어지고 있는 한 비구니의 단식은 애오라지 천혜의 자연보고인 천성산을 지키고 살리자는 것.
지난해 6월 청와대 앞에서 시작한 세 번째 단식은 정부로부터 ‘법원 항고심 판결 때까지 공사중단’과 ‘환경영향 공동 전문가 검토’를 약속받은 뒤 58일만에 풀었다. 그러나 환경부가 약속을 깨고 ‘터널공사가 천성산 습지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는 내용의 단독 조사 결과를 발표한데다 법원의 현장검증마저 취소되자 지난해 10월27일 네 번째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지율스님은 단식 80일째를 넘겨 자신을 찾아온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터널공사는 하되 3개월간 발파공사를 중지하고 그동안 환경영향을 공동 조사하자’는 것으로 ‘선 조사, 후 공사’를 주장했던 애초의 요구수위를 한층 낮췄다. 이쯤에서 정부가 지율 스님이 단식을 풀 명분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으련만, 정부가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자 스님은 지난달 21일 농성 장소였던 청와대 부근 거처를 떠나 행방을 감췄다가 현재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지율, 왜 거듭 단식인가?
산속의 수행자를 저자거리로 몰아내고 세 차례에 이어 네 번째 곡기를 끊게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약속위반이 그 단초다. 노 대통령은 후보시절인 2002년 12월 대선과정에서 ‘천성산 터널 공사 백지화 및 전면재검토’를 불교계 10대 공약 중 첫 번째로 제시했지만 막상 당선 후에는 지율 스님측 천성산대책위원회를 배제한 채 노선재검토위원회를 구성, 기존 노선대로 공사를 강행키로 결정해 버렸다.
지율스님이 매번 청와대 근처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건 바로 노 대통령의 약속위반에 대한 묵언의 시위인 셈이다.
◆꼬인 매듭, 풀길은 없나?
현재로선 지율스님의 생명을 살리면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율스님은 ‘3개월 발파공사 중지 및 환경영향 공동조사’라는 제의를 해놓고 정부답변을 기다리던 지난달 20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나로서는 물러설 만큼 물러섰다.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답답한 건 내가 아니라 정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지율 스님측 이동준 변호사는 최근 "나를 비롯해서 스님과 가까운 이들도 스님을 만날 때마다 단식을 풀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정부 입장이 이전보다 강경해진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율스님은 이미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장례는 동생(36ㆍ여)이 맡아서 소박하게 치르고, 대법원에서 검토 중인 ‘도롱뇽소송’은 이 변호사가 맡아달라고 부탁을 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