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똬리를 틀고 있다. 여럿이 먹은 밥값이나 술값도 한 사람이 도맡아 내기 일쑤요, '한턱내기'와 '내가 쏘기'는 곧잘 화끈하고 통 큰 행동으로 비친다.
그러다 보니 돈 낼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은 공연히 구두끈을 매며 머뭇거리는 웃지 못 할 일도 벌어지는 것이다.
그에 비해 서구인들의 '더치페이'문화는 매우 합리적이고 개운한 소비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더치페이- 이는 비용을 각자 부담하는 네덜란드식 계산법을 일컫는 말로 '더치 트리트(Dutch treat)'에서 유래한 말이다. 일본에서도 '와리깡(割勘)' 이라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공동부담이 일상화 되어 있나 보다. -흔히 '어음와리깡'이라 할 때의 와리깡은 '와리비끼(割引)'를 잘못 쓴 것임.
하기야 우리나라에도 예부터 '도리기' 또는 '도르리'라는 토박이말이 있어 왔다. '도리기'는 '여러 사람이 추렴한 돈으로 음식을 장만하여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을 일컫는 말이고 '도르리'는 '여러 사람이 차례 바꿈으로 돌려가며 음식을 내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일찍이 우리의 전통사회에도 공동부담의 문화가 터 잡아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요즈막에 양산시 공무원사회에서 '더치페이' 바람이 불고 있다 해서 화제다. 더욱이 이 바람의 근원지가 오근섭 시장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의 파장이 더욱 크다.
오 시장은 더치페이문화를 "체면과 관계없는 실리적이고 합리적인 나눔과 책임 문화의 출발이자, 우리 문화의 하나인 '십시일반'과도 그 맥을 같이하는 협동의 문화"라고 정의했다.
오 시장은 또 "더치페이를 통해 검소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고 특히 세간에는 한 사람만의 경비 부담을 공직의 비리와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며 공직내부의 더치페이 문화 조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한창 재기발랄한 젊은이의 발상이라면 모를까 인생 60고개를 바라보는 이의 머릿속에서 이런 기발한 생각이 나왔다니 한층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학력으로 온갖 간난을 이겨내고 마침내 한 도시의 수장에까지 이른 오 시장이고 보면 여느 사람과는 다른 경제관념을 가짐직하다.
오 시장의 이번 제안을 두고 '선거용 제스처'라며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다지만, 애써 내놓은 좋은 제안에 공연히 어깃장을 놓을 필요는 없겠다.
다만, 이번 제안이 한때의 '반짝 제안'으로 끝나지 않고 양산 공직사회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잘만하면 양산의 더치페이 바람, 아니 '도리기 바람'이 양산을 벗어나 전국의 공직사회 전반으로 번져나갈 수도 있으려니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