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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데스크칼럼]지율 스님이 던진 숙제..
사회

[데스크칼럼]지율 스님이 던진 숙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05/02/17 00:00 수정 2005.02.17 00:00

 단식… 38일, 40일, 58일, 2003년 2월5일부터 시작된 지율 스님의 단식이 지난해 10월27일 네 번째에 접어들어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흐르고 석 달을 넘어 100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세상이 수런거리고 마침내 정부도 화들짝 놀랐다.
 100일 단식은 의학계에서도 말했듯 생물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생각이 얕은 사람들이야 '정말 단식을 한 것이 맞느냐?'며 생뚱맞은 소리를 할만도 하겠다.

 스님의 단식을 두고 언론은 '목숨을 건 단식'이라고 썼지만,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스님은 이녁의 목숨을 버릴 생각으로 단식을 시작한 것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자연 속에 뿌리내린 산사의 생활을 통해 그는 일찍이 자연과 인간이 두 가지가 아닌, 하나라는 것을 깨쳤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천성산이, 내 몸이 부서지려고 하는데 나설 수밖에요… 그것은 삶의 절박한 문제이지 무슨 사상이거나 이념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스님의 단식은 이녁의 목숨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녁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선택한 수단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지난 해 어느 날 스님을 만났다. 국내 처음으로 동물인 도롱뇽을 원고로 제기됐던 일명 '도롱뇽 소송'에서 도롱뇽이 패소하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저지 비상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마련한 자리인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다.
 오후 4시 30분에 시작한 기자회견이 끝나고 6시 30분에 시청 동백홀에서 가지는 스님의 책, '지율, 숲에서 나오다' 출판기념회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
 '160㎝ 쯤이나 될까?' 작달막한 키에 자그마한 몸집. 그 어디에 무슨 힘이 있나 싶었더니 그는 참으로 간결한 말로 내 의문을 풀어 주었다.
 "진실이죠. 진실은 결코 진 적이 없어요." 그랬다. 진실이 이긴다는 그 믿음 하나가 한 비구니 스님을 사바의 바람찬 저잣거리에서 그리도 당당하게 했던 것이다.
 
 이번에 우리는 지율 스님으로부터 결코 풀기 쉽지 않은 숙제를 받았다.
 개발이냐, 보존이냐?
 우리는 그동안 편리함과 안락함을 위해 자연을 끊임없이 파괴해 왔다.
 인간의 탐욕이 부른 자연 파괴는 결국 인간 자신의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이제 앞으로 3개월의 환경영향 공동조사를 거쳐 천성산 아랫도리를 뚫을지 말지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지만, 어쩐지 미심쩍다.
 '어쨌든 기존노선은 강행한다'는 결론을 미리 마련해 놓고 공동조사에 들어갈 것 같은 낌새가 보인다. 국무총리가 '공동조사는 하되, 공기를 늦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하며, 일부 언론이 벌써부터 '이번 합의로 엄청난 추가비용이 소요되고 고속철 공사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을 보면 알만 하다.
 그래서는 안 된다. 환경영향 평가를 지금까지와 같이 형식적, 요식행위로 삼아서는 안 된다.
 어차피 큰 맘 먹고 중재안을 내 놓았으면 정부는 모든 것을 비우고 삿된 마음 없이 조사에 임해 양쪽이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결론을 끌어내어야 할 터이다.
 그러자면 경제논리에만 얽매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겸손한 마음으로 일부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대안노선까지를 염두에 두고 지율스님이 던져 준 숙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지율 스님뿐만 아니라 다른 어느 누구도 이제 더는 곡기를 끊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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